로마 제국 쇠망사 1권 12장(1) (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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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저서 읽기/로마제국 쇠망사(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로마 제국 쇠망사 1권 12장(1) (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사후 군대와 원로원의 동향· 타키투스 황제, 프로부스 황제 및 카루스 황제 부자의 치세

   황제 선택을 둘러싼 군대와 원로원 사이의 다툼

 로마 황제들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데 있어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반역과 살인이 계속 되풀이되면서 황제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황제들의 죽음은 사후에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반면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죽음은 달랐습니다. 군대는 황제의 죽음을 애도했을 뿐 아니라 원수까지 갚아주었습니다. 비서관에 의해 기만당해서 황제의 암살에 가담했던 공모자들도 황제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군대가 만장일치로 동의한 결의안이 잘 나타나 있는 편지를 보면 죽은 황제를 존경하고 애도하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용감하고 축복받은 군대가 로마 원로원과 시민 여러분께, 한 사람의 범죄와 여러 사람의 과실이 우리에게서 고(故)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를 빼앗아 갔습니다. 존경하는 원로원 의원 여러분! 원컨대 그분을 신들의 반열에 올려놓으시고 여러분의 판단에 따라 황제의 자주색 의복을 입을 후계자를 지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자신의 죄악과 불운으로 우리에게 손실을 입혔던 사람은 어느 누구도 우리 위에 군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로마 원로원은 평소 알력이 있었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죽음을 속으로 기뻐했습니다. 원로원은 군대가 자신들에게 황제 선출권을 주는 것에 대해 호의로써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군대의 변덕으로 새로운 황제의 안위가 걱정되었기 때문에 새 황제의 선출을 군대의 투표에 일임한다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서기 275년, 8개월의 평화로운 황제 공위 기간

 군대는 이전의 황제 선출에 있어서는, 무력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금전적으로 이로운 황제를 선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갑자기 원로원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니 원로원은 원로원대로 군대의 변덕을 믿을 수 없어서 각각 세 번의 재촉과 거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무정부 상태의 로마는 찬탈할 왕이 없으니 찬탈자도 없었고 반란도 없는 상태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또한 아시아 지역의 속주 총독 한 명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직무에서 파면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냥 물 흘러가듯이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로물루스의 사후에도 12개월동안 황제의 자리가 비어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때는 로마 건국 초기여서 제위가 비어있어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었지만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사후의 로마는 갖은 문제와 위험을 동반하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자칫 위험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군대가 제자리를 잘 지켜주었고 변경지역 방위도 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원로원과 군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서기 275년 9월 25일, 원로원을 소집한 집정관

 더 이상 지체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집정관이 원로원 회의를 소집해서 위태로운 상황임을 피력했습니다. 그는 군대의 충성심 또한 순간의 어떤 사건에 의해서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미 게르만족이 갈리아의 몇몇 부유한 도시들을 점령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밖에도 페르시아의 위협, 이집트와 아프리카, 일리리쿰은 국내외의 무력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집정관은 원로원 의원 중 타키투스에게 황제 선출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습니다. 

 

   타키투스의 품성

 원로원 의원 타키투스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타키투스 연대기」를 쓴 역사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타키투스 의원의 나이는 그때 당시 75세였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집정관을 지냈으며, 재산 또한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여러 황제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황제의 직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으며, 자신의 조상인 역사가 타키투스의 저서를 읽으며 로마의 정치 체제와 인간 본성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타키투스는 자신을 황제로 지목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자 바이아이에서 은둔 생활로 2개월을 보낸 뒤에야 집정관의 부름에 따라 원로원에 복귀하여 제국을 위해 조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황제로 선출된 타키투스

  그가 일어나 조언을 하려고 하자 의사당 곳곳에서 그를 황제의 칭호로 맞이하였습니다. 

타키투스 아우구스투스여, 신들이 그대를 지켜 주시기를, 우리는 그대를 우리의 군주로 선출하고 제국과 세계를 그대의 감독하에 맡깁니다. 원로원의 권위로 제국을 인수하십시오. 이것은 그대의 지위와 행동, 태도에 합당한 것입니다.

그는 이 부담스러운 명예를 사양하면서 아우렐리아누스와 같이 용맹한 군주의 후계자로 자신처럼 노쇠한 인물을 선출했다는 것에 놀라움을 나타냈습니다. 
타키투스는 자신은 이미 노쇠하여 원로원 의원직조차 버겁다고 하면서 군대관리에 대한 어려움을 피력하였습니다. 
 

   제위를 받아들인 타키투스

 500명의 의원들은 고령의 나이에 제위한 황제들을 언급하며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그들은 제국에게 필요한 사람은 군인이 아니라 군주임을 강조하였습니다. 타키투스는 동료 의원들의 계속되는 권유에 못 이겨 그들의 자발적인 충성의 맹세를 받아들였습니다.
 

   원로원의 권위

 타키투스는 옛 황제들의 선정으로 보존되었던 로마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타키투스가 황제로 선출되어 원로원이 되찾았던 중요한 특권 6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원로원 의원 중에 한 사람이 군대에 관한 통수권과 변경 속주들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했습니다. 둘째, 12명의 집정관단을 조직하여 두 사람이 조를 짜서 1년 동안 임기를 채우기로 하였는데, 한 사람이 두 달 동안 정무를 담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셋째, 여러 속주의 총독을 임명하고 모든 행정관에게 민정 관할권을 수여했습니다. 넷째, 수도 총독이라는 중간 직책을 통하여 제국의 모든 법정으로부터의 상소를 접수하게 했습니다. 다섯째, 원로원이 찬성한 황제의 칙령에 대해서도 칙령에 관한 설득력과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포고령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여섯째, 재정 분야에서 실시되었던 몇 가지 감찰 활동을 들 수 있습니다. 부정행위를 엄격하게 다스렸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도 국고 수입의 일부를 부정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원로원의 기쁨과 확신

 원로원은 이제 자신들이 군대를 통제하여 로마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원로원의 기대는 안타깝게도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잠시 반짝 소생했던 원로원은 다시 소멸해 버렸습니다. 
 

    서기 276년, 군대의 승인을 받은 타키투스

로마 제국 제 38대 황제 [275년 12월~276년 6월(7개월)]

 타키투스는 트라키아의 병영으로 향했습니다. 전임 황제 아우렐리아누스가 제2차 동방 원정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마이오티스 호 부근의 알라니족과 협상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알라니족은 선물과 보조금에 매수되어 경기병으로 구성된 대군을 이끌고 페르시아를 침략하기로 약속했고, 약속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로마 변경 지대에 도착했을 때, 그들과 협상한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이미 사망한 데다, 로마 장군들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애매한 상태가 돼버렸습니다. 그러자 알라니족은 로마의 애매한 행동을 배신행위로 간주하고, 순식간에 폰투스, 카파도키아, 킬리키아, 갈리티아 등 여러 속주로 퍼져 나갔습니다. 

나무위키 제공

 
 보스포루스의 반대쪽 해안에서도  도시와 촌락이 불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로마 군단들은 장군들에게 맞서 싸우자고 재촉했습니다. 타키투스는 전임 황제가 맺은 계약을 꼼꼼히 이행했고, 대다수의 알라니족은 자신들의 약탈품과 포로들을 양도하고 파시스 강 너머 자신들의 지역으로 돌아갔습니다. 계속 싸우고자 하는 알라니족은 전투를 벌여 승리했습니다. 타키투스 황제는 단 몇 주만에 아시아의 여러 속주를 알라니족으로부터 구해 냈습니다. 
 

   타키투스 황제의 죽음 서기 276년 4월

 캄파니아의 온화한 근거지에 익숙해져 있던 타키투스 황제는 한겨울에 카프카즈 산기슭에서의 군대 생활로 몸이 쇠약해졌습니다. 변덕이 심한 군대는 예상대로 황제를 우습게 여겼고, 급기야는 황제의 막사에서까지 난동을 부렸습니다. 타키투스 황제는 말이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식의 병사들의 파벌 싸움과 요구 때문에 고통스러웠습니다. 타키투스는 재위 6개월 20여 일 만에 카파도키아의 티아나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암살되었는지 병으로 숨졌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카프카즈(캅카스)산맥(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이룬다)

 

 제위 찬탈과 타키투스의 동생 플로리아누스의 죽음

로마 제국 제 39대 황제 플로리아누스[276년 7월~276년 9월(2개월)]

 타키투스의 동생 플로리아누스는 원로원의 승인도 받지 않고 황제의 자리를 찬탈했습니다. 이에 대해 동방 군대의 장군인 프로부스가 원로원의 복수를 해 주겠다고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군대 규모면에서 프로부스는 플로리아누스의 적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프로부스는 적극적인 태도로 장애물을 극복해 냈습니다. 플로리아누스의 병사들은 추운 기온에는 익숙했지만, 킬리키아의 타는 듯한 열기에는 병을 얻어, 병력수가 감소했으며 점차 전세가 기울자 결국 자신들의 황제인 플로리아누스를 암살하고 맙니다. 플로리아누스의 제위 기간은 3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서기 276년 7월

 제위를 찬탈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자 황제의 세습권에 관한 관심이 사라졌고, 덕분에 황제 자녀들은 목숨은 잃지 않았지만 평민 신분으로 좌천되어 일반 대중과 섞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재산도 없이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대단한 자산가였던 타키투스는 황제가 되면서 자신의 세습 재산을 국고에 바쳤는데, 그는 제국을 세습하려는 의도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의견도 있는데 자신이 불명예스럽게 사망했을 때 자녀들이 재산이 없으면 목숨은 부지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그렇게 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쩌면 두 가지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프로부스의 품성과 즉위

로마 제 40대 황제 [276년 6월~282년 9월(6년 3개월)](우 그림:https://alchetron.com)

 프로부스는 발레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황제의 눈에 들어 군대에서 정한 규칙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군단 참모장교의 지위에 오른 적이 있을 정도로 인정받는 인재였습니다. 그는 발레리아누스와 갈리에누스 황제 치하에서 고속승진을 했습니다. 그는 어떤 직책을 맡아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습니다. 그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엄격하고 잔인한 성격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황제의 잔인성을 제지시킬 수 있을 정도로 용감했고, 황제는 그런 그를 신뢰하였습니다. 원로원 의원출신 타키투스 황제는 자신의 부족한 군사적 능력을 부하 장군들의 능력으로 보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프로부스는 동방 여러 속주의 최고 지휘관으로 임명되었을 당시, 일반적인 경우보다 5배나 많은 급여를 받았습니다. 그만큼 그는 군사적 재능에 있어서는 인정받는 장군이었습니다.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는 대략 44세 정도였으며 몸과 마음에서 원숙한 활력이 흘러넘쳤습니다.
 

   원로원에 경의를 표하는 프로부스

 프로부스 자신은 제위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한 통의 편지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선망의 대상이자 위험으로 가득한 이 칭호를 버리는 것은 더 이상 나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병사들이 나에게 부과한 이 직분을 계속해서 수행해야만 하오.

 그는 원로원에 보낸 편지에서도 예의 바르고 정중한 태도를 드러냈습니다.

   서기 276년 8월

 프로부스의 겸손한 편지를 받은 원로원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그를 황제로 인정했습니다. 원로원은 프로부스에게 황제로써 가질 수 있는 칭호와 모든 권한을 수여했습니다. 원로원은 제국의 민간 행정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황제는 원로원에 황금 왕관이나 다른 민족에 대한 전승 기념물과 같은 수많은 승리의 산물을 가져다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프로부스 황제는 갈리에누스 황제가 통치할 당시 원로원의 무력행사를 두려워하여 군직에서 배제했던 칙령을 폐기하지 않고 묵인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경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야만족들에 대한 프로부스의 승리

 로마의 옛 영광을 되찾았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로마의 적들은 이전보다 더 격렬해졌으며 병력 수도 증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프로부스 황제에 의해 다시 한번 격파당했습니다. 그는 6년이라는 짧은 치세였지만, 다시 모든 속주에서 평화와 질서를 회복했습니다. 
프로부스 황제의 생애를 기록한 작가조차도 프로부스가 옮겨간 거리에 대한 놀라움을 나타낸 바 있습니다. 그만큼 그는 종횡무진 전쟁터를 뛰어다녔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부하 장군을 위임함에 있어서 현명하게 지명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군에서 뛰어난 무용을 자랑하던 이들은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와 프로부스 황제의 휘하 군대에서 엄격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서기 277년, 게르만족의 침입으로부터 갈리아를 구한 프로부스

 프로부스가 황제로써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임무는 갈리아 속주에 속한 70개의 부유한 도시들을 게르만족으로부터 탈환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로부스는 이 일을 성공적으로 잘 해냈습니다. 또한 반달족의 유력한 부족이었던 부르군트족을 무찔렀습니다. 갈리아를 침입 한 부족 중 가장 강력한 부대는 리기아족이었습니다. 리기아족 중에서도 아리이족이 수적으로도 우세했지만, 흉포성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족이었습니다. 아리이족은 몸을 검게 칠하고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에 싸우기 때문에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상대를 정서적으로 제압한 뒤 공격했습니다. 역사학 교수 헤르히비 볼프람에 따르면, 리기아족과 반달족은 실레지아 변경 지대의 같은 지역에 살았던 하나의 숭배 공동체로 보고 있습니다.

실레지아;현재 폴란드의 남서부 (브로츠와프: 실레지아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

 

 그러나 로마군은 이런 유령 같은 부족들조차 손쉽게 무찔렀습니다. 리기아족은 가장 중요한 전투에서 패배했고, 가장 명성이 높은 족장 셈노마저 로마 황제의 포로로 잡혔습니다. 프로부스 황제는 명예로운 항복을 받아주었고,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귀환하는 과정에서 벌인 전투에서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역사에서 두 번 다시 리기아족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프로부스 황제는 갈리아를 구출하기 위해 적군의 한 두(頭) 당 금화 한 닢 씩을 주었는데, 금화의 지출로 추정해 보았을 때 적군의 희생은 4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병사들이 금화를 받기 위해 숫자가 조작되었을 가능성 높고, 프로부스 황제도 관대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별다른 검사 없이 금화를 지급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거의 절반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 1권 12장(1)요약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황제의 자리가 8개월 동안 비어 있었습니다. 군대는 아우렐리아누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원로원 의원 중에서 황제를 뽑을 것을 제안하였고, 원로원은 군대의 변덕으로 새로운 황제의 안위가 위험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군대의 투표로 새 황제를 선출하라고 했습니다. 원로원의 3번의 만류와 군대의 3번의 요청으로 결국 군대의 의견이 받아들여졌고, 원로원 의원 중 타키투스가 황제가 되었습니다. 75세의 나이에 황제가 된 타키투스는 로마의 변경지대에 침입하는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 출격하였는데, 원로원 의원 출신인 데다 고령인 황제는 익숙지 않은 추위와 군대생활로 병을 얻어 사망했다는 설과 병사들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타키투스 황제의 죽음 이후 그의 동생 플로리아누스가 원로원의 승인도 없이 황제 자리를 찬탈했습니다. 당시 동방 군대의 장군인 프로부스가 원로원의 복수를 해 주겠다고 나서며 플로리아누스와 대치했습니다. 결국 프로부스가 승리하여 황제가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던 프로부스는 군대 인사배치와 전략 등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황제였습니다. 용맹했던 전임 황제인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이후 변경 지역에서 여러 부족들이 다시 로마를 침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프로부스 황제는 변경지역 평정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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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7 - [위대한 저서 읽기/로마제국 쇠망사(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 로마제국 쇠망사 1권 2장(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로마제국 쇠망사 1권 2장(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2 안토니누스 가(家) 황제들 시대의 로마 제국의 통일과 내부적 번영·예술·사람들 통치의 원칙 작가 기번은, 로마 제국이 위대한 점은 단지 빠르게 영토를 넓힌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 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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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1 - [위대한 저서 읽기/로마제국 쇠망사(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 로마제국 쇠망사 1권_1장(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로마제국 쇠망사 1권_1장(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1 안토니누스 가(家) 황제들 시대의 로마 제국의 범위와 군사력, 서기 98~180년 서기 2세기 로마 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탐나는 지역과 문명화된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는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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