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콤모두스의 잔인성, 우행, 살육, 페르티낙스의 즉위, 그의 개혁 시도, 근위대에 의한 암살, 분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관대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의 온화한 성품은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순진함으로 인해 기만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가족들에 대한 지나친 관대함으로 공적인 피해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의 아내였던 파우스티나(안토니누스 피우스황제의 딸)는 자유분방한 기질로서 고지식한 그의 성향으로는 다스리기 어려웠습니다. 파우스티나의 화려한 연애 편력에도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르쿠스는「명상록」에서 그토록 정숙하고 온화하며 검소한 부인을 내려주신 신께 감사드리는 내용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죽은 후에도 마르쿠스의 요청으로 여신으로 선포되었고, 신전에 모셔졌습니다. 심지어 모든 청춘남녀는 결혼식 날에 이 정숙한 수호 여신 앞에서 서약해야 한다는 법령까지 선포되었다고 하니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아내의 부정에 대해서 남편인 마르쿠스가 정말 몰랐을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들 콤모두스에 대한 관대함
아들의 극악무도한 악덕은 아버지의 미덕을 손상시켰습니다. 그런 못된 아들에게 황제 자리를 세습시켰다는 데서 마르쿠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마르쿠스는 콤모두스가 14~15세가 되었을 때 이미 황제의 권력을 함께 누리게 함으로써 교육을 망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콤모두스는 내면이 성숙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맛보게 된 권력에 취해 오만불손한 젊은이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폐해는 국민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콤모두스 황제의 즉위
작가 기번은 인간이 갈망하는 욕구를 소수만이 가짐으로써 범죄가 발생한다고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권력욕이 가장 중대하면서도 반사회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권력욕은 갖가지 이유로 정신적인 불안을 자극하기 때문에 동정심을 가질 수 없고, 그 결과 역사의 모든 페이지에는 내전의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한 것 같은 환경에서 즉위한 콤모두스는 훌륭한 황제가 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였지만,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콤모두스의 성격
콤모두스가 어렸을 때는 사나운 성질도 아니었고, 오히려 유약한 성질을 타고났다고 합니다. 그의 성질은 측근에 의해 타락하고 서서히 변해갔으며, 마침내 잔인성이 영혼을 지배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로마로 돌아온 콤모두스
아버지 마르쿠스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젊은 콤모두스는 콰디족, 마르코만니족과의 어려운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 당황하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게다가 마르쿠스가 생전에 축출했던 비열하고 방탕했던 젊은이들이 다시 콤모두스의 곁으로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군사력만으로도 충분히 야만족들을 쉽게 정복하거나 좋은 조건을 제시해 굴복시킬 수 있다고 떠벌리며 콤모두스를 안심시켰습니다.
방탕한 젊은이들은 판노니아의 병영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콤모두스에게 로마 생활의 달콤함에 대해 떠벌리며 로마로 돌아가기를 희망하였으나, 콤모두스는 전쟁이 마무리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가을이 되어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로마로 돌아온 콤모두스는 우아한 용모와 유창한 언변으로 온 국민에게 기쁨을 선사했고, 그즈음 이루어진 야만족과의 평화협상으로 인기는 한 층 올라갔습니다.
그가 즐기는 유흥과 쾌락도 19세의 젊은 나이라는 이유로 거의 비난받지 않았습니다.
콤모두스의 치세 처음 3년 동안은 아버지 마르쿠스가 존경하는 고문관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잘 유지되었습니다. 콤모두스와 젊은 측근들은 방탕한 생활을 하며 흥청망청 즐겼지만 아직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격을 결정지을 치명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서기 183년, 암살자에게 상처를 입은 콤모두스
황제의 누이 루킬라(아버지 마르쿠스와 공동 황제였던 루키우스 베루스의 부인, 남편이 죽고 원로원 클라디우스 폼페이아누스와 재혼함)가 2인자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황후의 권력을 질투하였기 때문에 원로원과 공모하여 동생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그녀는 사생활이 문란하였는데 자신의 연인 중 지위는 낮지만 야심이 큰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계획은 실패하였고 음모자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으며, 루킬라도 추방당했다가 결국 사형을 받고 죽게 됩니다.
원로원에 대한 콤모두스의 증오와 잔혹함
콤모두스는 '원로원이 보내는 것이다.'라는 자객의 외침이 가슴 깊이 새겨져서 원로원 전체를 증오하게 됩니다. 황제가 원로원의 불만과 음모를 찾아내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마르쿠스 황제 치세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던 밀고자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마르쿠스 황제가 존중했던 원로원은 이제 범죄자 집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의심으로 시작된 재판은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지명도 높은 원로원을 처형할 때는 그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마저 모두 처형했습니다. 이제 콤모두스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입니다.
퀸틸리아누스 형제
많은 희생자 중에 특히 아쉬운 사람은 퀸틸리아누스 가의 두 형제, 막시무스와 콘디아누스였다고 합니다.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던 형제였지만, 모든 면에서 흠 잡을 데 없는 미덕과 형제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에서 행정과 군대를 맡고 있었던 두 사람은 게르마니아와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잔인한 콤모두스가 베푼 마지막 최소한의 친절은 두 형제가 죽음까지 같이 하게 한 것입니다.
근위대장 페렌니스
서기 186년
콤모두스가 폭정을 일삼는 동안 국정의 세부적인 일은 페렌니스가 맡고 있었습니다. 그도 황제처럼 비굴하고 야심이 컸던 인물로서 전임자를 죽이고 공직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는 국민들을 착취하고, 그의 먹잇감이 된 귀족들의 영지를 가로채 거대한 부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근위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그의 아들은 일리리쿰에서 군단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이 그를 탐욕으로 이끌어, 제위를 탐하게 된 것입니다.
페렌니스의 죽음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는데, 군대의 하극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일례였습니다. 브리타니아에 주둔하고 있었던 군대의 병사들이 페렌니스의 행정 정책에 불만을 품고 1500명의 정예군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꾸려서 항의하기 위해 로마로 보낸 것입니다.
겁에 질린 황제는 페렌니스와 그의 아들을 처형시킴으로써 위기를 모면합니다. 이러한 하극상은 미래의 위험을 알리는 전조가 되었습니다.
마테르누스의 반란
공공 행정이 무너지자, 군대에서는 탈영병이 도망가기는커녕 거리로 몰려나와 약탈을 일삼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사병 출신 마테르누스라는 자가 탈영병들을 모아 작은 규모의 군대를 조직한 후 감옥의 죄수들을 석방시키고, 노예들에게는 자유를 요구하라고 부추겼으며, 에스파냐의 부유한 무방비 도시들을 습격했습니다.
속주의 총독들은 이런 약탈 행위를 방조하거나 심지어 돕기까지 했습니다. 마침내 황제의 위협적인 명령이 떨어지자 마테르누스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부하들에게 일단 해산 후 키벨레 축제 기간에 변장한 후 로마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의 야심은 대담하게도 황제를 죽이고 자신이 황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마치 성공할 것만 같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공모자의 밀고로 발각되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근위대장 클리안데르
의심 많고 어리석은 군주들은 비천한 사람들을 곁에 두어 오직 자신에게만 충성할 것이라는 환상을 품습니다. 그런 예로 클리안데르를 들 수 있는데, 그는 프리기아 출신으로 노예신분으로 로마에 보내졌습니다. 그는 황제의 비위를 잘 맞춰서 최고의 지위까지 신속하게 올라갔습니다. 그는 전임이었던 페렌니스보다 더 강력하게 콤모두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집정관, 명문 귀족, 원로원 의원의 자리를 매매했습니다. 심지어 그런 자리를 매매하지 않는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봤습니다. 속주에서는 속주민들의 재산을 약탈해서 총독과 나누어 가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죄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클리안데르는 3년 동안에 그 어떤 해방노예보다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고, 황제는 때에 맞춰, 그가 발 아래 갖다 바친 어마어마한 선물에 만족해했습니다.
클리안데르는 자신들의 악행을 감추기 위해 목욕탕, 주랑, 경기장들을 황제의 이름으로 많이 건설해서 대중의 관심을 돌리려 했습니다.
콤모두스는 덕망 높은 원로원이자 매형인 바루스가 클리안데르의 악행을 알려주려 하자 처형했고, 안토니누스 가의 마지막 자손인 아리우스 안토니누스마저 처형했습니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는 클리안데르에게 반기를 든 속주총독에게 유리한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습니다.
페렌니스의 죽음 이후 콤모두스는 약 한 달 동안 선정을 베푸는 듯 했으나, 클리안데르의 폭정이 다시 시작되자 국민들은 오히려 페렌니스가 더 나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서기 189년, 폭동과 클리안데르의 죽음
결국 터질 것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흑사병과 기근에 지친 대중은 다시 찾아 온 기근의 원인이 클리안데르가 곡식을 전매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황제의 별장으로 몰려가서 클리안데르의 머리를 내놓으라고 사납게 요구했습니다.
근위대의 지휘권을 갖고 있던 클리안데르는 기병대를 보내 폭도들을 해산시키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로마 시내로 도망쳤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칼에 맞아 죽거나 밟혀 죽었습니다. 로마 시내로 들어온 기병대에게 사람들은 돌과 화살을 던지며 그들을 저지했습니다. 그때 근위병들의 특권과 오만에 불만이 많았던 보병대가 대중들과 연합하면서 수적으로 밀린 근위대가 퇴각하였고 대중의 분노는 더욱 타올라서 거침없이 황제의 궁전까지 나아갔습니다.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쾌락을 즐기고 있던 황제에게 이러한 상황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황제의 누이와 애첩이 눈물로서 상황을 알렸고, 그제야 황제는 쾌락에서 깨어났습니다. 황제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습니다. 클리안데르의 머리를 던져 준 것입니다. 콤모두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콤모두스의 방탕한 쾌락
야생 동물 사냥
원형경기장에서 솜씨를 과시하는 콤모두스
콤모두스는 수치심도 잊어버린 채 궁정 안에서만 하던 행사를 전 로마 시민이 보는 앞에서 거행했습니다. 갖가지 진귀한 동물을 포함해서 수많은 동물들이 경기장 안으로 끌려들어 와서 콤모두스의 활에 맞아 쓰러졌으며 시민들은 환호하였습니다.
검투사로 활동한 콤모두스
콤모두스의 파렴치함
콤모두스는 수치스러운 직업으로 법률과 풍속이 정해놓은 검투사가 시민들이 분노와 수치를 느끼게 합니다. 특히 콤모두스는 검투사의 역할 중 세쿠토르의 역할을 했는데 세쿠토르는 무장을 했지만, 상대역인 레티아리우스는 벌거벗은 채 그물과 삼지창만 주어집니다. 누가 보아도 레티아리우스에게 불리한 게임이었습니다. 황제는 세쿠토르의 역할을 맡아 무려 735번의 시합을 벌였다고 합니다. 더 황당한 것은 황제가 검투사들의 공공 기금에서 터무니없이 많은 봉급을 받아갔기 때문에 시민들은 새로운 세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콤모두스는 이제 헤라클레스의 칭호도 경멸하게 되었고, 세쿠토르였던 파울루스라는 검투사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자신들의 음모
서기 192년 12월, 콤모두스의 죽음
역사가들은 콤모두스의 의심 때문에 희생된 집정관급 원로원 의원들의 긴 목록을 작성해 놓고 있습니다. 콤모두스는 안토니누스 가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병적으로 적대시하였고 설령 자신의 총신이라도 예외 없이 모두 제거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행동은 가까운 사람들마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했고, 결국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키게 됩니다.
그는 애첩 마르키아가 준 독이 든 포도주를 먹고 의식을 잃자 레슬링 선수였던 젊은이에 의해 목이 졸려 죽었습니다.
이로써 13년의 폭정은 끝이 나게 됩니다.
콤모두스의 죽음과 페르티낙스의 짧은 제위 기간
음모자들은 콤모두스의 사후 조치를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집정관급 원로원 의원이자 그 당시 로마 총독이었던 페르티낙스를 다음 황제로 지목했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시종장과 근위대장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페르티낙스는 콤모두스가 드디어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황제로 추대한다는 말에 자신을 시험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오해가 풀리자 마지못해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음모자들은 동요를 막기 위해 황제가 뇌일혈로 쓰러졌다고 둘러대고 덕망높은 페르티낙스가 황제가 되었다고 온 도시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근위대는 황제의 은혜를 충분히 받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있었으나,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새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원로원에서는 콤모두스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콤모두스의 계략일까봐 숨을 죽였습니다. 마침내 콤모두스의 죽음을 확인한 원로원은 콤모두스의 악행을 비난하였고, 새로운 황제에게 충성서약을 했습니다.
그렇게 아첨하던 원로원이 황제가 죽은 이후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원로원들은 콤모두스의 시체를 갈고리에 찍어 검투사들의 탈의실로 끌고 가는 치욕을 보이려고 했으나, 그의 매형이었던 클라디우스 폼페이우스의 눈물의 호소로 치욕적인 일은 면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황제 페르티낙스는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고 여러 가지 조치를 통해 콤모두스 시기에 비어있던 국고를 채워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적인 면에서 이미 기득권으로 행세해 온 자들의 심기를 건드리게 됩니다.
페르티낙스는 국민들에게는 사랑과 존경을 받았지만, 이미 부패한 정권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이룬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가 되었습니다.
특히 콤모두스의 치세 동안 해이해졌던 근위대가 다시 엄격한 훈력을 받아야 하고, 새로운 황제가 약속한 돈을 주지 않고 자신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자 이에 불만을 품은 근위대장 라에투스가 새 황제가 즉위한 지 3일째 되던 날 원로원 중 한 명을 납치해 황제의 자의를 입히려고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또 한 번 야심의 유혹에 넘어간 젊은 집정관에 의해서 황제가 바뀔 뻔했으나 이번에도 곧 진압되었습니다.
그러나 콤모두스가 죽은 지 86일 째 되던 날 3월 28일에 근위대 병영에서 대규모 반란이 발생했습니다. 궁전의 문은 청렴한 황제에게 거부감이 있는 가신들에 의해 활짝 열렸고, 페르티낙스는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페르티낙스의 안타까운 죽음은 국민들의 한탄을 불러왔고, 미래의 고통은 더 뼈저리게 다가올 것입니다.
[로마 제국 쇠망사 1권 4장 요약]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의 죽음으로 젊은 나이에 왕이 된 콤무두스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같은 권력을 행사했었기 때문에 철학적인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성향을 보입니다. 그는 갈수록 난폭하고 잔인해졌고 국고를 방탕하게 탕진했으며 관능적인 욕구에 몰두했습니다.
원로원에 의한 암살 사건이 발생하자 원로원을 증오하게 되었고, 많은 수의 원로원들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결국 그는 불안을 느낀 측근(애첩)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원로원은 빠르게 사태를 정리하기 위해 좋은 이미지로 무리 없이 정권 이양이 가능한 페르티낙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주었습니다.
갑작스럽게 황제가 된 페르티낙스는 콤모두스가 탕진한 국고를 채우기 위해 급하게 서두르다가 근위대와의 마찰이 생겨 궁정에 난입한 근위대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근위대는 이미 정치군인이 되어서 황제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권리가 중요해졌습니다. 근위대는 자신들이 갑자기 개혁의 대상이 되자 분노를 느껴 궁정에 침입하였던 것입니다.
페르티낙스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 긍정적인 면으로는 청렴해서 자신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에 힘썼다는 점이고, 부정적인 면으로는 융통성이 없고 정치를 할 준비가 안되어서 근위대의 하극상을 불러왔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몸을 피하지 않고 분노한 군인들을 설득하려는 희망을 품었다는 데서 어리석다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많은 속주들을 통치했던 경험이 있는 그가 그렇게 융통성이 없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남습니다.
페르티낙스의 죽음은 그 당시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있었던 로마 시민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대한 저서 읽기 > 로마제국 쇠망사(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제국 쇠망사 1권 6장(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4) | 2023.12.20 |
---|---|
로마제국 쇠망사 1권 5장(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2) | 2023.12.06 |
로마제국 쇠망사 1권 3장(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2) | 2023.12.02 |
로마제국 쇠망사 1권 2장(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0) | 2023.11.27 |
로마제국 쇠망사 1권_1장(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1) | 2023.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