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폴뤼토스(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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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저서 읽기/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힙폴뤼토스(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힙폴뤼토스(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작품 소개
 
아테나이 왕 테세우스와 결혼한 크레테 공주 파이드라는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전처 힙폴뤼테 소생으로 결혼을 거부하여 청정한 생활을 하던 힙폴뤼토스에게 반해 상사병에 걸린다.
 
파이드라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려고 최대한 노력하지만, 뚜쟁이를 자칭한 그녀의 유모가 거절당하자 힙폴뤼토스가 자기를 유혹하려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편에게 남기고 목매달아 죽는다. 에우리피데스에 따르면, 파이드라가 힙폴뤼토스를 모함한 것은 구애가 거절당해 창피하기도 하고, 힙폴뤼토스가 그녀를 조롱한 것이 괘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힙폴뤼토스는 아버지에게 추방당해 해안을 따라 전차를 몰고 가다가 느닷없이 바다에서 나타난 괴물 황소에 놀란 말들이 이리저리 질주하는 바람에 전차에서 굴러떨어져 고삐에 질질 끌려 다니다 숨을 거둔다. 테세우스는 자신이 잘못했음을 너무 늦게 알게 된다. 
 
등장인물
 
아프로디테
힙폴뤼토스  테세우스의 아들
코로스  힙폴뤼토스의 사냥꾼 친구들로 구성된
늙은 하인
코로스  트로이젠의 여인들로 구성된
파이드라  테세우스의 아내, 힙폴뤼토스의 새어머니
테세우스  아테나이와 트로이젠의 왕
사자
아르테미스
 
그 밖에 파이드라의 하녀들과 테세우스의 시종들
 
 
장소  트로이젠 궁전 앞
 

고대그리스지도

극이 시작되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나타나 힙폴뤼토스가 자신을 사악한 여신이라 부르고, 처녀 신이자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와 어울려 사냥을 하면서 들짐승들의 씨를 말린다고 질투 섞인 비난을 합니다.
 
그러면서 아프로디테는 힙폴뤼토스가 자신에게 지은 죄를 벌주려고 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녀는 힙폴리토스의 새어머니 파이드라가 힙폴뤼토스를 보고 격렬한 사랑의 포로가 되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는 질투와 복수의 화신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그녀의 저주와 복수에 대한 이야기가 유난히 많은 이유도 아프로디테가 가지고 있는 속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비극도 아르테미스만 숭배하는 힙폴뤼토스에 대한 복수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만큼 아르테미스의 복수심은 인간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로 강하게 묘사되곤 합니다.
 
아프로디테는 힙폴뤼토스와 파이드라의 사랑을 힙폴뤼토스의 아버지 테세우스에게 알릴 것이고, 그러면 힙폴뤼토스는 아버지에 의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파이드라도 명예롭게 죽기는 하되 역시 죽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때 힙폴뤼토스가 아르테미스를 찬양하며 나타나고 아프로디테는 퇴장합니다.
 
힙폴뤼토스는 아르테미스의 순결을 찬양하며 그녀의  입상에 화환을 걸어줍니다.
 
그 때 늙은 하인이 나타나 힙폴뤼토스에게 조언합니다.
 
늙은 하인  모두를 사랑하지 않는 거만한 자는 미움 받는 법이지요.
 
늙은 하인은 아르테미스만 챙기고 아프로디테에게 인사도 하지 않는 힙폴뤼토스에게 우려를 표합니다.
 
힙폴뤼토스는 신들이든 인간들이든 저마다 취향이 있기 마련이고, 자신은 밤에 경배해야 하는 신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멀리서 인사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늙은 하인은 힙폴뤼토스가 걱정이 되어 아프로디테 신상에게 기도합니다.
 
늙은 하인  (중략) 여주인 퀴프리스(아프로디테)여! 그대는 이해해주소서. 젊은 혈기에 누군가 허튼 소리를 한다 해도! 그대는 못 들은 척하소서! 신들께서는 인간들보다 더 지혜로우셔야 하니까요.
 
한편 트로이젠 여인들로 구성된 코로스는 힙폴뤼토스에 대한 사랑으로 열병을 앓고 있는 파이드라에 대한 노래를 합니다.
 
코로스 (우 1)  마님께서 병상에서 심히 앓으시며 두문불출하시고, 고운 베일로 금발머리를 가리고 계시다고. 그리고 마님께서는 오늘로 벌써 사흘째 곡기를 끊고 식음을 전폐하시고는, 남모르는 고통에 죽음의 불행한 종말을 향하여 배를 몰기로 결심하셨다고 나는 들었어요.
 
파이드라가 집 밖에 나오고 싶어해서 유모는 그녀를 들것에 눕히고 하녀들을 시켜 밖으로 나옵니다. 유모는 간병을 하느니 차라리 병드는 게 낫겠다며 그녀를 간병하는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합니다.
 
유모  어리석게도 우리는 지상에서 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 무엇에 집착하지만, 이는 우리가 다른 삶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지하에 감취진 것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공허한 이야기에 끌려다닐 뿐이에요.
 
에우피데스는 유모를 통해 가진 것에는 만족 못하고 끝없이 잡히지 않는 것을 탐하는 인간의 욕심에 대한 질타를 하고 있습니다.
 
유모는 파이드라가 괴로워 하는 이유를 알아야겠다며 파이드라에게 애원합니다. 파이드라는 유모의 간절한 청에 못이겨 자신이 괴로워서 병에 걸린 이유를 말합니다.
 
파이드라는 자신의 생모와 친언니의 불행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며 괴로워합니다.
 
파이드라의 생모 파시파에와 친언니 아리아드네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형제들과 왕위쟁탈전을 하던 크레테 왕 미노스는 포세이돈에게 자신이 왕위에 적합하다는 증표를 보내달라고 하였고, 포세이돈은 그의 기도를 받아들여 황소 한 마리를 보내줍니다. 그러나 미노스는 왕이 된 후에도 포세이돈에게 그 황소를 제물로 바치지 않았고,  화가 난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가 그 황소를 사랑하게 만들어 소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가진 미노타우로스('미노스의 황소'란 뜻)를 낳게 됩니다. 미노스는 아테나이 출신 다이달로스가 지은 미궁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고 아테나이에서 공물로 바치는 소년소녀들을 먹이로 주게 합니다. 그래서 테세우스가 세 번째 진상 때 공물의 한 명으로 자원해 크레테에 갑니다. 테세우스를 본 크레테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실꾸러미를 이용해,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테세우스가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오게 돕습니다. 테세우스는 공물로 같이 갔던 소년소녀들과 파시파에의 언니인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도망치던 중 낙소스 섬에 잠든 그녀를 버려두고 떠납니다. 그러자 그녀를 안타깝게 여긴 주신(술의 신) 디오뉘소스가 그녀를 아내로 맞습니다.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카라치작품)

그러고 보니, 테세우스는 파이드라의 남편이 아닌 형부가 될 뻔 했네요. 그리스 신화 가족관계 정말 복잡합니다.
 
파이드라는 자신의 생모와 친언니처럼 자신도 불행한 삶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탄합니다.
 
상담기법 중 하나인 교류분석이론에서 보면 인생각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류분석이론은 미국의 정신의학자 에릭 번(Eric Berne)이 개발한 심리학 기법입니다. 그가 말하는 인생각본은 역기능적 행동은 생존을 위해 어린 시절에 자기한계를 결정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파이드라도 친어머니나 친언니처럼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자신의 인생각본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살면서 옛어른들이 한 말들이 세대를 거치면서도 의미가 퇴색되지 않고 적용되는 것에 놀라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씨가 되어 어떤 생산물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생각과 실천은 다른 것 같습니다. 저도 나이들수록 말을 조심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때론 젊었을 때 아무생각없이 했던 말들이 부끄러워 질 때도 있습니다. 말은 내 입에서 나가는 순간 거두어들일 수가 없으니까요. 특히 어린 자녀교육에 있어서는 인생각본은 너무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모는 파이드라가 힙폴뤼토스를 사랑해서 병이 난 것을 알고 감당이 하기 힘든 괴로움에 몸부림칩니다.
 
유모  정숙한 여인들조차도 본의는 아니더라도 역시 나쁜 짓을 좋아하니 말예요. 퀴프리스(아프로디테)께서는 단순히 여신이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예요. 여신께서는 여기 계신 마님과 나와 이 집을 파멸케 하셨으니까요.
 
파이드라는 사랑의 열병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첫째, 비밀로 하기, 둘째, 참고 극복하기, 세 번째, 자살하기를 생각해 보았다고 말합니다.
 
유모는 누구나 사랑의 열병을 앓을 수 있다고 위로하면서, 목숨을 버리는 방법 말고 참고 극복하는 방법을 택하라고 조언합니다.
 
유모 (중략) 인생에 대해 사람들은 너무 엄격해지려 해서는 안 돼요. 집을 덮어주는 지붕도 빈틈없이 가지런할 수는 없잖아요?
 
갑자기 유모는 파이드라를 위해 해서는 안될 일을 꾸밉니다. 그녀는 상사병에 걸린 파이드라를 위해 힙폴뤼토스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파이드라를 사랑해 줄 것을 부탁하였고, 힙폴뤼토스는 유모의 제안에 치를 떨면서 분노합니다.
 
힙폴뤼토스  (중략) (유모에게) 그처럼, 사악한 여인이여, 그대도 아버지의 결혼침상을 범하도록 나를 설득하려 왔던 것이오. 나는 흐르는 물을 귀에 뿌려 그런 제의들을 씻어내고 싶소.(중략) 
 
그는 자신이 유모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에 신에게 비밀을 맹세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킬 것이며 자신은 집을 떠나 있겠다고 말합니다.
 
파이드라는 유모의 경솔함때문에 자신의 비밀이 탄로나자 몹시 괴로워합니다.
 
코로스장  아아, 끝장났어요. 마님의 유모가 계획했던 일은 실패하고 말았어요. 마님! 이젠 다 글렀어요.
 
파이드라  (중략) 저주받아라, 할멈처럼 친구들이 원치 않는데도 좋지 못한 방법으로 호의를 베풀려는 자는!
 
유모같은 친구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는데 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상대를 돕는 것이 아니라 더 궁지로 몰아넣는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도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유모와 비슷한 방법으로 저를 돕겠다는 친구가 있으면 완곡한 거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세상사는 사필귀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모  (중략) 마님의 병을 고칠 약을 구하다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거예요. 성공했다면 사람들은 나를 현명하다고 생각했겠지요. 성공을 해야만 우리는 지혜롭다는 평을 들으니까요.
 
파이드라는 수치심으로 괴로워하다 결국 목을 매어 자살을 합니다.
 
하녀들이 파이드라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있을 때 테세우스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파이드라(알렉상드르 카바넬)

테세우스는 파이드라의 자살소식을 듣고 급히 파이드라를 보러 갑니다. 테세우스는 죽은 파이드라를 보고 너무 슬퍼서 오열합니다. 테세우스는 파이드라가 남긴 서찰을 발견합니다. 
 
테세우스는 힙폴뤼토스가 새엄마 파이드라를 범하려했다는 편지를 발견하고 분노합니다. 그는 포세이돈에게 힙폴뤼토스가 오늘을 넘기지 말고 죽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때 집으로 돌아온 힙폴뤼토스는 자신을 의심하는 아버지에게 자신은 아직까지 숫총각이라고 주장하면서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테세우스는 그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힙폴뤼토스  (중략) 이 여인은 순결할 수 없는데도 순결해졌고 저는 순결한데도 그것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군요.
 
테세우스  (중략) 너는 고향 땅에서 추방되어 객지를 떠돌다가 결국 비참한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힙폴뤼토스  아아, 저는 어디로 가야 하지요? 추방된다면, 어떤 친구가 저를 집 안에 받아주겠어요?
 
힙폴뤼토스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자신을 쏘아부치는 아버지 테세우스에 의해 결국 집을 나가게 됩니다.
 
힙폴뤼토스  (중략)  자, 내 고향 땅의 죽마고우들이여, 내게 작별 인사를 하며 나를 이 땅에서 배웅해주구려. 그대들은 나보다 더 순결한 남자는 보지 못할 것이오. 내 아버지께서는 믿지 않으시지만.
 
엘리스의 인지·정서·행동 이론을 적용해 볼때 힙폴뤼토스의 사고는 순결에 대한 인지적 오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는 꼭 순결해야 한다'. '나의 친구들도 나처럼 순결해야 한다''세상은 순결한 나를 인정해야 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반드시 또는 절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도 모르는데 함부로 비난하거나 속단하는 것은 인간관계를 망치는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극단적인 사고와 대처방법이 비극으로 치닫는 연료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힙폴뤼토스의 친구들로 구성된 코로스도 아쉬움을 노래합니다.
 
여인들의 코로스 (우 2)  (중략)그대가 추방되었으니, 그대를 남편으로 삼으려던 소녀들의 경쟁도 이제 끝났구나!
 
얼마 후 사자가 나타나 테세우스를 찾았고, 그는 테세우스에게 힙폴뤼토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고 전합니다.
 
사자는 테세우스가 포세이돈에게 힙폴뤼토스가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듯이, 전차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고 전합니다.
 
아직까지 분노가 남아있던 테세우스는 포세이돈에게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테세우스가 힙폴뤼토스가 어떻게 사고를 당했느냐고 묻자, 사자는 전차를 타고 가던 그가 사로니코스 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지하에서 굉음이 울리면서 불가사의한 파도가 네 필의 말을 덮치면서 황소 한 마리도 뭍으로 내려왔는데, 그 황소가 괴물처럼 울부짖는 바람에 말들이 놀랐지만 힙폴뤼토스가 말고삐를 잡고 계속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하였으나, 결국 황소가 전차를 넘어뜨리면서 힙폴뤼토스의 발이 고삐에 묶여 끌려가면서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전합니다. 그런 다음 괴물 황소는 바위투성이의 땅속으로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힙폴뤼토스(로렌스 알마 타데마)

코로스장  아아, 또 새로운 재앙이 일어났구나! 운명과 숙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로구나!
 
테세우스는 부상당한 힙폴뤼토스를 데려오게 합니다.
 
그때 지붕 위에서 아르테미스가 나타납니다.
 
아르테미스  (중략)  아내의 거짓말을 믿고, 불확실한 것을 믿고, 하지만 그대가 자초한 파멸은 확실하노라. (중략) 그대는 앞으로 착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 자격이 없노라! 
 
아르테미스 신은 파이드라가 아프로디테 신의 사주를 받아 힙폴뤼토스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해줍니다. 힙폴뤼토스는 유모와의 맹세때문에 테세우스에게 학대당하면서까지 의리를 지켰다고 칭찬하면서, 파이드라가 거짓 서찰로 힙폴뤼토스에게 파멸을 안겨주었다고 전합니다.
 
테세우스  아아, 슬프도다!
 
아르테미스는 테세우스가 증거나 예언자의 목소리도 기다리지 않고, 숙고해보거나 검토해보지 않고 서둘러 포세이돈에게 아들을 죽여달라고 기도한 것에 대해 나무랍니다. 
 
그때 피투성이가 된 채 힙폴뤼토스가 들것에 실려 나타났고 몸의 통증으로 고통스러워 합니다.
 
테세우스  나는 망했구나! 내 아들아! 나는 사는 것이 더는 즐겁지가 않구나!
 
힙폴뤼토스  아버지의 잘못 때문에 저는 저보다 아버지를 위해 더 슬퍼해요.
 
테세우스  내 아들아, 너 대신 내가 죽었더라면!
 
아르테미스  (중략) 힙폴뤼토스여, 그대에게 이르노니, 그대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마라, 그대가 당한 것은 그대의 운명이니라. 자, 편히 가거라! 나는 죽은 자들을 보아서는 안 되며, 죽어가는 자들의 입김을 눈에 쐬어서도 안 되느니라. 보아하니, 그대는 곧 죽을 때가 된 것 같구나.
 
힙폴뤼토스는 죽으면서도 아버지 테세우스를 걱정해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고, 테세우스는 그런 심성을 가진 아들을 잃는 것에 대해 몹시 괴로워하며 극이 끝나게 됩니다.
 
코로스  모든 시민들의 몫인 이 슬픔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노라. 그런 만큼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리리라. 위대한 사람들에 관한 슬픈 이야기일수록 우리 마음을 더 슬프게 하는 법이니까.
 
다음은 천병희 선생님의 해설의 일부입니다.
 기원전 428년에 공연된 힙폴뤼토스에서는 파이드라가 연정을 이기지 못하여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장면에 이어 인간이 죄를 짓게 되는 과정에 대한 차분한 고찰이 나온다. 여기서 파이드라는, 인간은 지혜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대개 올바른 것을 알면서도 나쁜 욕망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죄를 짓는다고 말하고 있다. 파이드라가 말하는 격정과 지혜는, 메데이아의 독백에서 인간의 운명을 규정하는 대립적인 힘들로 일컬어지는 격정과 숙고를 떠올리게 한다. 
 
불완전한 우리의 삶도 계속되는 격정과 숙고의 줄다리기 속에서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알면서도 불의를 저지르게 되는 인간의 불완전성이 비극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