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아스(소포클레스, 천병희 옮김)
작품소개
『아이아스』는 소포클레스의 현존 비극들 중 맨 먼저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는 죽은 아킬레우스의 무구들이 그리스 장군들의 투표에 의해 자기가 아닌 오뒷세우스에게 주어지자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는다. 그리하여 밤에 그리스 장군들을 습격하지만, 아테나 여신이 그를 미치게 한 탓에 그들 대신 가축 떼를 도륙하고 돌아온다. 다시 정신이 든 아이아스는 부끄럽고 참담하여 위로하는 애첩과 전우들을 안심시키고 한적한 바닷가로 나가 적장 헥토르에게 선물받은 칼의 칼끝을 위로 가게 땅에 고정시키고 그 위에 엎어져 자살한다.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이 그를 매장하지 못하게 하지만 오뒷세우스가 나서서 그를 매장하는 것을 허락하도록 설득한다.
등장인물
아테나 여신
오뒷세우스 그리스군 장수
아이아스 그리스군 장수
코로스 살라미스 섬의 선원들로 구성된
테크멧사 아이아스의 첩
사자(使者)
테우크로스 아이아스의 이복동생
메넬라오스 그리스군 장수. 아가멤논의 아우
아가멤논 그리스군 총사령관
무언배우
에우뤼사케스(아이아스와 테크멧사의 어린 아들), 가정교사, 전령 외.
장소 트로이아 해변의 그리스군 진영에 있는 아이아스의 막사 앞.
이른 아침에 오뒷세우스가 땅바닥을 살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테나가 기계장치를 타고 공중에 나타난다.
오뒷세우스가 간 밤에 그리스 군이 약탈해온 가축 떼가 그 가축 떼를 지키던 사람과 함께 모두 도륙된 사실을 보고 받고 조사를 하고 있을 때 아테네 여신이 나타나 간 밤의 일은 아이아스의 소행이라고 말합니다. 아테네는 아이아스가 아킬레우스의 무구가 제비뽑기에 의해서 오뒷세우스한테 주어지자 그 보복으로 그리스군들을 죽이려고 했으나, 자신이 아이아스에게 미망을 들이부어 가축떼가 그리스군으로 보이게 해서 가축 떼가 도륙당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소와 양들을 그리스군으로 착각하여 숙소로 몰고 가서 채찍질을 하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아테네는 오뒷세우스에게 아이아스의 광기를 보고 그리스 군에게 알리라고 하였고, 오뒷세우스의 안전을 위해서 아이아스의 눈에는 그가 보이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테네는 막사 안에다 소리를 쳐서 아이아스를 막사 밖으로 불러냅니다.
밖으로 나온 아이아스에게 아테네는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그의 동생 메넬라오스에게 무기를 휘둘렀는가 물어보았고, 아이아스는 자신이 그들이 죽였으며 자신의 무구를 뺏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테네가 오뒷세우스에 대해서 묻자, 아이아스는 그가 막사의 기둥에 묶여 있으며 채찍에 맞아 등이 빨개진 뒤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이아스는 아테네 여신에 의해 미쳐있는 상태입니다.)
아테네가 아이아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낙이라면 계획했던 대로 착수하고 실행에 옮기라고 말하자, 아이아스는 아테네에게 동맹자로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합니다.
아테네는 오뒷세우스에게 미망(迷妄)에 빠진 아이아스를 보고 신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오뒷세우스 비록 그가 내 적이긴 하지만 저는 사악한 미망에 빠져든 그의 불행을 동정합니다. 그의 운명이 내 운명으로 여겨지니까요. 제가 보기에,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환영이나 실체 없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며칠 전 늦은 저녁에 제 딸과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빨간 색으로 보이는 차 두 대가 어두운 곳에 비상 깜박이를 켜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고 있던 제가 '저 차는 두 대가 모두 빨간 색이네' 이렇게 말을 하자 같이 보고 있던 딸은 '앞에 있는 차는 검은 색인 것 같은데요.' 하고 말을 하였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비상 깜박이가 번쩍거리자 색상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던 우리는 그 차의 색상이 궁금해져서 가까이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둘 다 빨간 차가 맞았습니다. 다만 앞쪽에 있는 차는 조금 더 어두운 톤의 빨간 색이었습니다. 색상을 확인한 우리는 '눈 앞에 있는 차의 색상도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데 과연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라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일화였습니다. 오뒷세우스의 대사에서도 살아 있는 우리들의 실체에 대한 덧없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테나 그대는 그런 통찰력을 지녔으니 신들에게 절대로 주제넘은 말을 내뱉지 말고, 체력과 재력에서 그대가 누군가를 능가한다 하여 우쭐대며 뻐기지 마라. 무릇 인간사란 하루아침에 넘어질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다시 일어설 수도 있느니라. 하지만 신들은 신중한 자들을 사랑하고 사악한 자들은 싫어하지.
아이아스의 첩 테크멧사와 코로스는 간 밤에 있었던 일이 그리스 군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있음을 두려워하고 아이아스의 안위를 걱정하는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
테크멧사 더는 붙들지 않을 거예요. 번갯불이 그치면 날뛰던 남풍도 잦아들듯, 그이도 잠잠해졌어요. 이제 제정신이 돌아오면 그이는 새로운 고통을 당할 거예요. 남의 개입 없이 스스로 불러들인 고통을 본다는 것은 큰 고통을 안겨주는 법이니까요.
테크멧사는 지난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궁금해하는 코로스장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줍니다.
테크멧사 (중략) 그러나 지금 그이는 무거운 불운에 짓눌려 자신의 칼에 죽은 짐승들 한가운데 식음을 전폐한 채 말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어요. 그이의 말과 비탄이 그렇게 암시하고 있어요. 그러니 친구들이여, 안으로 들어가 그이를 도와주세요. 그대들에게 어떤 힘이 있다면, 이것이 내가 이리로 온 까닭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친구들의 말에 설득되니까요.
코로스장 테크멧사여, 텔레우타스의 따님이여, 그대는 끔찍한 소식을 전하는구려. 그분이 이번 재앙으로 실성하시다니!
정신이 든 후 자신이 저질러 놓은 행위를 보고 참담함을 느낀 아이아스는 선원들로 구성된 코로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합니다.
코로스장 그런 불길한 말씀 마세요. 악을 악으로 치유하지 말고, 잘못한 것보다 더 가혹하게 그대를 벌주지 마세요.
아이아스 오오, 제우시시여, 내 선조들의 아버지시여, 하지만 나는 저 가장 교활하고 가증스런 악당(오뒷세우스)과 그들 형제 왕들(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을 죽이고 싶어요. 마침내 나 자신이 죽기 전에 말예요.
테크멧사는 아이아스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과 아들을 버리지 말라고 애원합니다. 아이아스는 동생 테우크로스에게 자신의 아들 에우뤼사케스를 고향 부모님에게 데리고 가 부모님을 봉양하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테크멧사에게 아들 에우뤼사케스를 데려오게 합니다. 그는 아들 에우뤼사케스에게 테우크로스가 지켜줄 것이니 자신이 없더라도 아무도 욕설을 퍼붓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이아스는 자살하기 위해 막사를 나섭니다.
그후 사자가 나타나서 테우크로스가 뮈시아의 언덕에서 돌아왔으며 아이아스에게 테우크로스가 한 말을 전해야 한다고 아이아스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고, 코로스장은 아이아스가 외출했음을 알려줍니다.
사자는 너무 안타까워하며 예언자 칼카스가 말하기를 아이아스를 오늘 하루만 막사에 붙들어 둔다면 아테나 여신의 분노가 풀릴 것이라고 전합니다. 사자는 아테네가 분노한 이유는 아이아스가 너무 자신의 용맹을 믿고 신들을 우습게 알았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그러면서 아이아스를 막사 안에 붙들어 두지 못한다면 그는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자의 말을 전해들은 테크멧사는 칼카스의 예언을 듣고 아이아스를 찾아달라고 주위사람들에게 애원합니다.
한편 아이아스는 자살을 하려고 헥토르에게서 받은 칼의 칼끝이 위로 향하도록 고정해놓고 있습니다.
자살을 위해 칼끝을 위로 가게 고정하는 아이아스(기원전 530년경)
그는 제우스에게 자신의 시시을 동생인 테우크로스가 가장 먼저 발견해서 훼손되지 않기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혼백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헤르메스신에게도 자신을 편히 잠들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복수의 여신에게는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가 자손들의 손에 죽도록 도움을 청하겠다고 말합니다. 또한 헬리오스 신에게는 자신의 죽음을 부모님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아스는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칼 위에 엎어집니다.
무대에서는 아이아스를 찾지 못한 코로스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때 아이아스의 시신을 발견한 테크멧사가 통곡합니다.
테크메사 아무도 그분을 보지 마세요. 내가 이 외투로 그분을 완전히 가릴래요. 설사 그분의 친구라 하더라도 그분이 자해한 치명적인 상처에서 콧구멍까지 검은 피를 뿜어내는 모습을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테니까요. 아아, 어떡해요? 어느 친구가 당신을 들어 올리죠? (중략)
코로스장 부인, 그댁가 통곡하고 또 통곡해도 놀랄 일이 아니오. 그대는 방금 사랑하는 분을 잃었으니 말이오.
테크멧사 그대는 생각할 수 있을 뿐이지만, 나는 뼈저리게 느껴야 해요.
뒤늦게 나타난 테우크로스도 형 아이아스의 죽음에 통곡하였고, 아이아스의 아들 에우뤼사케스를 보호하기 위해 빨리 자신에게 데려오게 합니다.
테우크로스 (중략) (코로스에게) 그대들은 제발 두 사람의 운명을 잘 살펴보구려! 헥토르는 여기 이분에게서 선물로 받은 혁대로 전차 난간에 묶여 질질 끌려가다가 결국에는 숨을 거두었소.(아킬레우스에게 전사한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 의해 전차에 묶여 끌려다님) 한편 이분은 헥토르한테서 이 칼을 선물로 받았다가 이 칼 위에 엎어져 숨을 거두고 말았소. 쇠를 불려 이 칼을 만든 것은 복수의 여신이고, 그 혁대를 만든 것은 잔혹한 장인인 하데스가 아니었을까?(중략)
그때 메넬라오스가 나타나 테우크로스에게 아이아스의 시신을 거두지 말라고 하였으며, 만약 어길 시에는 테우크로스가 무덤에 들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테우크로스는 메넬라오스의 말에 반발하며 그의 협박을 무시하고 아이아스를 무덤에 뉘어드리겠다고 말하며 메넬라오스와 말다툼을 합니다.
메넬라오스 한 가지만 일러두겠는데, 이자는 묻힐 수 없어.
테우크로스 나도 한마디 하겠는데, 이분은 묻히게 될 거요.
테우크로스는 때마침 나타난 테크멧사와 에우뤼사케스에게 자신이 무덤을 마련하고 다시 올 때까지 아이아스의 시신을 지키라고 하였고, 선원들에게는 에우뤼사케스를 지켜주라고 부탁하고 떠납니다.
코로스(좌1) 아아, 언제 햇수가 다 채워져서 어느 때쯤 끝나려나, 이 끝없이 이어지는 세월은? 넓은 트로이아 땅에서 내게는 언제나 전투의 노고를 지우고 헬라스인들에게는 슬픔과 치욕을 안겨주는 이 세월은?
아이아스의 시신 곁으로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오는 것을 본 테우크로스는 아이아스의 시신이 걱정이 되어 서둘러 자신도 시신 곁으로 갑니다.
아가멤논이 테우크로스에게 메넬라오스와 다툰 것에 대해 얘기하며 테우크로스를 나무라자, 테우크로스도 지지 않고 아이아스가 그리스 군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큰 역할을 했음을 주장하며 맞받아칩니다. 일리아스에서 아이아스는 그리스 군에서는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용맹한 장수로 그려졌고 실제로 엄청난 무훈을 세웁니다.
그때 오뒷세우스가 나타나 아가멤논에게 아이아스를 매장시켜줄 것을 조언합니다. 결국 오뒷세우스에게 설득당한 아가멤논은 아이아스의 매장을 허락합니다.
코로스장 오뒷세우스님, 이런 분인 그대를 지혜를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바보겠지요.
오뒷세우스는 지혜롭다는 수식어가 따라 다닐 정도로 그리스 군 사이에서는 책략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말을 누구도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뒷세우스 그리고 이제는 테우크로스에게 선언해두겠소. 전에 내가 그에게 적이었던 그만큼 지금은 친구라고 말이오. 그래서 나는 여기 이 고인을 묻는 데 협조하고 함께 힘쓰며 사람들이 가장 고귀한 영웅들에게 당연히 해드려야 할 것을 한 가지도 빠뜨리고 싶지 않소이다.
테우크로스는 오뒷세우스의 행동을 칭찬하였지만 죽은 아이아스가 좋아할 것 같지 않으니 매장 하는 일에는 관여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고, 오뒷세우스는 테우크로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리를 떠납니다.
테우크로스는 아이아스를 매장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게 했고, 자신은 아이아스의 아들 에우뤼사케스와 함께 칼 위에 쓰러져 있는 아이아스의 시신을 들어올립니다.
코로스 사람들은 일단 보고 나면 많은 것을 헤아릴 수 있으나, 보기 전에는 아무도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예언할 수 없지요.
고전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 올 운명에 대해 함부로 속단하거나 자만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잘 나간다고 자만하여서도 안 되고, 지금 힘들다고 포기하여서도 안 된다는 것을 후세에 알려줌으로써 삶에 대해 겸허한 자세를 가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고전을 지식에 대한 욕심으로 읽지 말고 마음으로 느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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