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키스 여인들(소포클레스, 천병희 옮김)
작품소개
『트라키스여인들』의 공연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아이아스, 안티고네와 더불어 초기작으로 추정된다. 헤라클레스는 에우뤼토스의 아들 이피토스를 죽인 까닭에 가족과 함께 트라키스로 추방된다. 극이 시작되면 헤라클레스는 15개월째 출타 중인데, 떠나기 전 아내 데이아네이라에게 그 기간이 경과하면 자기가 죽든지 아니면 살아서 앞으로는 행복하게 살게 되리라는 말을 남긴다. 데이아네이라는 아들 휠로스를 보내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하게 된다. 이어서 전령이 한 무리의 여자 포로를 끌고 나타나 헤라클레스가 에우보이아 섬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포로 중에는 에우뤼토스의 딸 이올레도 있었는데,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이 그녀를 첩으로 데려왔음을 알아내고는 남편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반인반마의 켄타우로스 넷소스의 피를 미약인 줄 알고 남편이 입을 윗옷에 발라 보낸다. 그 피를 칠하던 양털 뭉치가 햇볕에 오그라드는 것을 보고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지만 때는 이미 늦어, 휠로스가 돌아와 헤라클레스가 그 옷을 입자 옷이 살을 파고들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어머니를 살인자라 나무란다. 데이아네이라가 말없이 퇴장한 후 곧 유모가 나타나 그녀의 자살을 알린다. 헤라클레스는 모든 것이 신의 뜻임을 알고 아들에게 자기를 오이테 산으로 운반하여 화장하고 나서 이올레와 결혼하라고 이르자, 휠로스는 마지못해 승낙하여 자기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신들을 원망한다.
등장인물
데이아네이라 헤라클레스의 아내
유모
휠로스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의 아들
코로스 트라키스 시의 소녀들로 구성된
사자(使者)
리카스
헤라클레스
노인
장소 트라키스 시에 있는 헤라클레스의 집 앞. 데이아네이라가 집에서 등장하고 유모가 뒤따른다.
그리스 신화의 이해(이진성 지음)-제공
작품은 데이아네이라의 독백으로 시작됩니다.
데이아네이라 옛날부터 사람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었지요. 누군가 죽기 전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저승에 가기도 전에 지금 벌써 잘 알고 있어요. 내 인생이 불운하고 괴롭다는 것을.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와 결혼하기 전에 자신에게 구혼했던 하신(河神) 아겔라오스로 인해 결혼이 괴롭고 두려워서 죽고 싶었던 과거를 떠올립니다. 다행히 헤라클레스가 나타나서 아겔라오스를 물리치고 데이아네이라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녀는 헤라클레스와 결혼한 후 그가 걱정되어 애를 태우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고, 아이들에게도 관심없는 헤라크레스에게 서운해합니다. 그러면서도 15개월째 소식이 끊긴 채 출타중인 남편이 무슨 사고가 났을까봐 불안해 합니다.
옆에 있던 유모가 데이아네이라에게 아들 휠로스를 시켜 헤라클레스를 찾아보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하였고 그녀는 받아들입니다.
아들 휠로스는 자신이 아버지의 소식을 알고 있으며, 아버지 헤라클레스는 뤼디아 여인 옴팔라 밑에서 종살이를 했는데 지금은 벗어났으며, 에우보이아에 있는 에우뤼토스 왕의 도시와 전쟁을 하고 있거나 계획 중이라고 알려줍니다.
데이아네이라는 아들 휠로스에게 헤라클레스가 그 곳 에우보이아에서 죽거나,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면 여생을 편히 보낼 것이라는 예언을 알려주면서 에우보이아로 가서 아버지 헤라클레스를 도울 것을 부탁하였고 휠로스는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코로스 (우2) 내 이르노니, 그대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신 크로노스의 아드님(제우스)께서는 필멸의 인간들에게 고통 없는 운명을 주시진 않았어요. 우리 모두에게 슬픔과 기쁨은 돌고 도는 법이지요. 마치 큰곰이 운행 주기에 따라 돌고 돌듯이 말예요.
코로스 (종가) 인간들에게는 낮도 밤도 지속되지 않으며, 재앙도 부도 지속되지 않아요. 그것들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같은 사람에게 기쁨과 궁핍이 되풀이되지요. 그래서 마님께 말씀드리거니와, 늘 희망을 잃지 마소서. (중략)
데이아네이라는 결혼으로 인해 남편과 자식 걱정에 안절부절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말하며, 헤라클레스가 집을 떠나기 전에 유언을 남기듯이 서판을 주고 간 것때문에 불안하다고 합니다.
그 서판에는 미망인의 상속분이며 아들들의 재산분할에 대해 씌여있다고 하면서, 헤라클레스가 떠난 지 일 년하고 석 달이 지나면 그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그 예언때문에 몹시 불안하다고 말합니다.
그 때 사자가 나타나 헤라클레스가 금의환향하고 있다는 전령 리카스의 말을 전해줍니다. 그 말을 들은 데이아네이라는 무척 기뻐합니다.
조금 지나자 전령 리카스가 도착하여 말하기를 헤라클레스가 뤼디아에서 노예의 몸으로 야만족 여왕 옴팔레에게 팔려 1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였는데, 그 이유는 에우뤼토스 왕이 언젠가 헤라클레스를 무시하고 쫒아낸 적이 있었고, 그런 일이 있은 후 에우뤼토스의 아들 이피토스가 잃어 버린 말을 찾던 중 헤라클레스를 만나게 되었고 같이 말을 찾아 티륀스의 언덕에 갔을 때 자신을 의심한다고 오해한 헤라클레스가 이피토스를 절벽에서 밀어서 죽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죗값으로 옴팔레에게서 종살이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궁수 시합에서 우승자에게 주기로 한 에우뤼토스의 딸 이올레도 헤라클레스가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지 않자 에우뤼토스에게 복수심을 가진 헤라클레스는 군대를 모아 에우뤼토스를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전합니다. 또한 자신은 전리품인 여인들을 데리고 먼저 돌아왔고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에게 신성한 제물을 바친 뒤 돌아올 것이라고 합니다. 오이칼리아에서 데리고 온 여인들 중에는 에우뤼토스의 딸 이올레도 있습니다.
그러나 데이아네이라는 그 여인들을 보고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여인을 보고 말을 걸었는데 그 여인은 이올레였습니다.
데이아네이라 오오, 불행한 소녀여! 너는 대체 누구이냐? 처녀인가, 아니면 어머니인가? 네 외모를 보아하니, 결혼 같은 것은 알지 못하는 양갓집 규슈로구나. (이올레가 말없이 눈물만 흘리자) 이봐요, 리카스, 이 이방의 여인은 누구의 딸이오? 어머니는 누구며, 낳아준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오? 말해보오. 여인들 중에 그녀가 가장 보기 안쓰럽구려. 그녀만이 고통에 맞는 감정을 느끼는 것 같으니까요.
데이아네이라는 전령 리카스에게 그녀의 이름을 물었으나 자신은 데리고 오기만 하였을 뿐 이름은 모른다고 말합니다.
리카스가 여인들을 집안으로 데리고 가고 데이라네이라도 들어가려고 하는데 리카스보다 먼저 헤라클레스의 도착 소식을 전했던 사자가 나타나 데이아네이라에게 다가서며며 전령 리카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리둥절 해 하는 데아네이라에게 그는 전령 리카스가 데이아네이라에게 도착하기 전에 사람들 앞에서 떠들어 대던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는 헤라클레스가 에우뤼토스의 도시 오이칼리아와 전쟁을 한 것은 오직 에우뤼토스의 딸 이올레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에우뤼토스왕이 이올레를 첩으로 달라는 헤라클레스의 청을 거절해서 전쟁을 일으켰으며, 이올레는 노예로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자의 말에 데이아네이라는 조금 전에 전령 리카스가 이올레를 이름 없는 여인이라고 맹세한 것에 대해 괴씸하게 생각합니다. 데이아네이라는 여인들을 데려다 놓고 나오는 리카스와 사자에게 대질심문을 합니다. 리카스는 사자가 정신병자라고 하며 자신이 한 말을 부인합니다. 데이아네이라는 리카스에게 헤라클레스가 말하지 말라고 해서 그런거라면 괜찮다고 안심시켰으며, 헤라클레스는 이미 수 많은 여인들과 결혼했고 누구도 자신에게 나쁜 말이나 욕설을 들은 적이 없으니 사실을 말하라며 그를 설득합니다.
데이아네이라의 설득에 리카스는 헤라클레스가 에우뤼토스왕을 공격한 것은 이올레 때문에 행한 일이 맞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은 헤라클레스가 시킨 것이 아니며 데이아네이라가 속상해 할까봐 염려되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데이아네이라는 리카스에게 자신의 안부편지와 선물을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데이아네이라는 전령에게는 담담하게 대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깊은 실망과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전에 네소스(켄타우로스족, 반인반마)에게서 거두어둔 피를 바른 옷을 준비합니다.
넷소스의 피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가 결혼하여 칼뤼돈에서 살고 있을 때 헤라클레스가 데이아네이라 아버지 오이네우스의 친척을 죽이게 되는 일이 일어났고, 그 일로 헤라클레스 가족은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그들이 에베노스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강을 건너가게 도와주는 켄타우로스(반인반마)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넷소스였습니다. 넷소스는 헤라클레스와 만난 적이 있었는데, 헤라클레스가 12가지 과업중 에뤼만토스의 멧돼지를 산 채로 잡아오는 과업을 실행하는 중 켄타우로스와 싸움이 붙게 되었는데, 헤라클레스는 휘드라의 독이 발린 화살로 켄타우로스족을 모두 맞혀 죽입니다. 그런데 그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명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넷소스였습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그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넷소스가 데이아네이라가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돕고 있었는데 강의 한가운데에 이르자 그가 갑자기 그녀를 겁탈하려고 하였고, 헤라클레스가 휘드라의 독이 발린 화살로 그를 맞혀 죽입니다. 넷소스는 죽으면서 데이아네이라에게 자신의 피가 나중에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넷소스의 말을 듣고 그의 피를 조금 거두어 두었던 것입니다.
전령 리카스는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고 하면서 데이아네이라에게 자신에게 전할 말을 하명해 달라고 합니다.
데이아네이라 (중략)그대는 내가 손수 짠 이 긴 겉옷을 내 남편을 위한 선물로 그이에게 갖다드리시오. 그이에게 갖다드리되 어떤 사람도 그이보다 먼저 이 옷을 몸에 둘러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리시오. 그리고 황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는 날 그이가 이 옷을 입고 만인이 보는 앞에 공공연히 나서서 신들에게 보이기 전에는 햇빛도, 제단의 불도, 화덕의 불꽃도 이 옷을 비춰서는 안 된다고 말이오. 나는 그렇게 서약했으니까요.(중략)
전령 리카스는 데이아네이라가 시킨대로 할 것을 맹세하고 길을 떠납니다.
데이아네이라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낍니다.
데이아네이라 모르겠어요. 하지만 내가 기대를 갖고 행한 일이 큰 재앙이 되었음이 곧 드러날까봐 두려워요.
코로스장 설마 헤라클레스 님께 드린 선물 말씀은 아니겠죠?
데이아네이라 바로 그거요! 그래서 나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일은 성급하게 추진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어요.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에게 보낸 옷에 칠을 할 때 쓴 털복숭이 양모 뭉치가 햇빛을 받자 산산히 부서져 땅바닥에 떨어졌고, 그것이 떨어진 땅바닥에서는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데이아네이라 (중략) 대체 무엇 때문에 그 괴수(넷소스)가 죽어가며 자기에게 죽음을 가져다준 내게 호의를 보였겠어요? 말도 안돼요. 그자는 자기를 쏘아 맞힌 자를 없애려고 나를 호렸던 거예요. 아아, 나는 너무 늦게 그것을 알게 되었어요. 알아봤자 아무 도움이 안 될 때 말예요.(중략)
넷소스에게서 거둔 피가 헤라클레스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가진 데이아네이라는 만약 그렇게 되면 자신도 같이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살다보면 눈 앞의 이익때문에 자신이 어떤 실수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생깁니다. 자신의 실수를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죠. 사람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이용해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인간의 이런 불완전한 정서구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남편의 사랑에 급급해서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 데이아네이라의 경우도 조금 더 신중했었으면 비극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인간들의 어리석은 지식과 판단이 어떻게 비극으로 이어지는가를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데이아네이라의 남편 헤라클레스와 같이 귀향하던 아들 휠로스가 먼저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며 원망하는 말을 퍼붓습니다.
퓔로스는 귀향하던 헤라클레스와 케나이온 곶이라는 곳에서 처음 재회했고, 그곳에서 헤라클레스가 제우스에게 막 제물을 바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전령 리카스로부터 어머니 데이아네이라가 보낸 옷을 건네받았다고 합니다.
헤라클레스는 데이아네이라가 보낸 장식 달린 옷을 마음에 들어하며, 그 옷을 입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 때 불꽃이 타올라 헤라클레스의 살갗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으며, 겉옷이 그의 살갗에 엉겨 붙었고, 고통으로 경련까지 일으킨 헤라클레스는 전령 리카스를 의심해서 그의 발목을 잡아 내던지게 되었고, 그는 두개골이 박살이 나서 죽었다고 합니다.
전령이 죽기 전에 그 옷을 데이아네이라에게서 받았다는 말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데이아네이라와의 결혼을 저주했으며, 그가 아들 휠로스에게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자신을 옮겨달라고 부탁하였고 휠로스는 간신히 아버지를 모시고 트라키스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휠로스 (중략)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제 아버지께 이런 일을 궁리하시고 행하시다가 발각되신 거예요. 그 죄로 정의의 여신과 복수의 여신께서 어머니를 벌하시길! 그것이 옳다면 저는 그렇게 기도하겠어요. 한데 그것은 옳아요. 어머니께서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훌륭한 분을 살해함으로써 정의를 짓밟으셨으니까요.
어머니의 행동으로 아버지를 잃게 된 아들 휠로스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어머니에게 너무 아픈 말을 가감없이 뱉어내는 휠로스의 말을 듣는 데이아네이라의 마음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아들에게서 원망을 들은 데이아네이라는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갔고, 조금 후 집안에서는 곡소리가 들립니다.
집안에서 늙은 유모가 슬픔에 젖어 나타나서 데이아네이라가 칼로 스스로를 찔러 자살했다고 전합니다.
유모 (중략) 그 광경에 아드님은 통곡했지요. 가련하게도 아드님은 자신의 분노가 이런 일을 초래했고, 어머니께서 본의 아니게 괴수에게 오도되어 그런 짓을 하셨다는 것을 너무 늦게 하인들에게서 들었으니까요. 그러자 가련한 젊은이는 쉴 새 없이 어머니를 위해 슬피 울며 큰 소리로 애절하게 통곡했고, 어머니의 입에 키스를 쏟아 부우며 어머니 옆에 나란히 누워서는 자기가 근거 없이 어머니를 비방했마며 자꾸만 비통해하고, 자기는 이제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 분 다 동시에 여의고 살아가게 되었다며 울고 있어요. 집 안 사정은 그래요. 그러니 누군가 이틀 또는 그보다 더 많은 날들을 미리 내다보려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오늘을 무사히 넘기기 전에 내일은 없으니까요.
조금 후에 한 노인이 하인들을 시켜 헤라클레스를 들것에 실어서 데리고 옵니다.
휠로스가 들것에 실려온 아버지를 보고 애통해 하자, 노인은 헤라클레스가 자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잠에 깬 헤라클레스가 다시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헤라클레스는 잠에서 깨어 고통으로 절규합니다.
헤라클레스 내 아들아, 이 아비를 불쌍히 여겨 주저 없이 칼을 빼어 들고 내 가슴을 찔러 네 불경한 어머니가 돋궈놓은 이 고통을 치유해다오. 네 어머니가 나를 죽인 그대로, 그대로 쓰러져 있는 꼴은 보았으면! 오오, 달콤한 하데스(저승의 신)여!
헤라클레스는 너무 고통스러워 죽음마저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인 것 같습니다.
헤라클레스 얼마나 많은 모질고, 말하기조차 끔찍한 노고를 나는 내 이 두 손으로, 두 어깨로 감당해냈던가! 하지만 제우스의 아내(헤라)나 가증스런 에우뤼스테우스가 일찍이 내게 부과했던 어떤 노고도 오이네우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딸(데이아네이라)이 내 어깨에 걸쳐준 이 옷과 같지는 않았어. 내가 그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이 악령의 그물 말이야.(중략)
12고역을 마무리하는 헤라클레스(기원전 510년경, 도자기)
헤라클레스의 12고역은 대부분 그리스를 괴물로부터 해방하는 일이었다.
그가 마지말 고역인 저승 출입문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를 제압해 넘기고 있다.
헤라클레스가 왜 헤라의 미움을 받게 되었는지 천병희 선생님의 해설을 옮겨보겠습니다.
[결혼의 여신인 헤라는 남편 제우스가 가까이한 여신들과 여인들은 물론이고 그 자식들까지 미워하는데 다수의 피해자 중에서도 가장 고통받은 것이 헤라클레스였다. 그가 뮈케나이 왕 에우뤼스테우스 밑에서 치른 12고역도 헤라의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12고역을 성공적으로 치른 까닭에 후일 하늘의 신이 되어 헤라와도 화해하고 제우스와 헤라의 딸인 헤베(청춘의 여신)와 결혼한다. 헤라클레스가 '헤라의 영광'이란 뜻의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수행한 고역들은 헤라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라가 부과한 고역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그는 결국 신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에서 그 영광은 그 자신의 것이도 하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옷을 선물한 아내 데이아네이라를 원망하며 그녀를 응징하겠다며 아들 휠로스에게 어머니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휠로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어머니는 아버지 마음을 얻으려고 넷소스의 속임수에 속아서 미약인줄 알고 실수를 하신 것이라고 어머니에 대한 해명을 합니다.
헤라클레스는 죽기 전에 신탁들을 말해준다고 자신의 어머니 알크메네와 형제자매들을 불러 모으라고 합니다.
헤라클레스는 휠로스에게 자신이 들은 신탁을 이야기해줍니다. 자신은 이미 저승에 가있는 자(넷소스)에게 죽을 운명이라는 것과 제우스가 예언하기를, 헤라클레스가 노고에서 해방된다고 했던 것은 죽음을 의미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들 휠로스에게 자신을 전적으로 도와야 하고 자신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아버지의 말에 복종하겠다고 제우스에게까지 맹세한 아들 휠로스에게 헤라클레스는 자신을 오이테산의 정상에 나르고 참나무와 올리브 나무가지를 베어 와 그 위에 자신의 육신을 올려놓고 화장을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들 휠로스를 저주하겠다고까지 합니다.
장작더미 위의 헤라클레스(루카 조르다노 작)
휠로스가 자신이 친부살해자라는 오명을 쓰는 것이 두려워 망설이자, 헤라클레스는 그것이 자신을 구원해주고 해방시켜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득합니다.
헤라클레스는 또 휠로스에게 자신이 데리고 온 에우뤼토스의 딸 이올레와 결혼할 것을 부탁했으나, 휠로스는 자신의 부모를 죽음으로 몰고간 철천지원수와 결혼하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헤라클레스가 신들을 증인으로 내세우며 간곡하게 부탁하자, 휠로스도 마지못해 헤라클레스이 부탁을 받아들입니다.
휠로스 (중략) 신들께서는 자식을 낳아 아버지로 추앙받으면서도 이런 고통을 방관하시다니, 미래사는 아무도 예견할 수 없는 법. 하지만 지금 닥친 일은 우리에게는 비참하고, 신들에게는 수치스럽고, 이 운명을 참고 견디는 이에게는 비할 데 없이 잔혹하구나.
코로스 소녀들이여, 그대들도 함께 이 집을 떠나도록 해요. 그대들은 이 집에서 방금 끔찍한 죽음과 온갖 이상한 고통을 보았어요. 하지만 그중에 제우스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어요.(그 모든 것이 제우스의 뜻이라는 의미)
마지막의 휠로스와 코로스의 대사에 관한 천병희 선생님의 해설입니다.
'헤라클레스를 화장터로 인도하는 행렬이 무대를 떠나는 가운데 휠로스가 내뱉는 절규는 주목할 만하다. 고통을 참다못한 그는 아버지들이라고 불리면서도 수치스럽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했다며, 소포클레스의 현존하는 비극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격렬한 어조로 신들에게 반항한다. 그러나 휠로스의 절규도 "하지만 그중에 제우스 아닌 것은 하나도 없어요."라는 마지막 행 코로스자의 말에 묻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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