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쇠망사 1권 15장 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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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저서 읽기/로마제국 쇠망사(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로마제국쇠망사 1권 15장 Part(2)

천년왕국의 교리

 선지자(예언자) 엘리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예언에 따르면 현세의 6천 년이 끝나면 천년 간의 즐거운 안식일이 이어질 것이고, 그리스도가 전 인류의 부활의 날로 정해진 그 순간까지 지상을 다스릴 것이라고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 결과 천년왕국의 본거지가 될 새 예수살렘은 화려한 상상력으로 장식되었는데, 에덴동산은 로마 제국 시기의 번성한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상 속의 새도시는 황금과 보석으로 채워지고, 풍성한 곡물과 포도주가 넘쳐흐르며, 사유 재산에 관한 법률 따위에 속박당할 일도 없었습니다.
 역대 교부들은 이런 천년왕국에 대한 확신을 되풀이하여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 교리는 정통파 신자들 사이에서는 지배적인 견해였으며, 그리스도교의 전파에도 매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런 견해는 이단 종파와 광신자들이 꾸며 낸 불합리한 이야기로 배격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교리는 여전히 공인 성경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천년왕국에 대한 이미지(by https://www.lifestyleofpeace.com/2023/05/10-facts-about-millennial-reign-of.html)

   로마의 대화재와 세상의 종말

 그리스도교인들은 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들이 우상 숭배를 고집했기 때문에 온갖 재난이 연달아 일어났다는 주장을 했는데, 내란과 야만족의 침입, 전염병과 기근, 혜성과 일식 및 월식, 지진과 홍수 등을 말합니다.  결국 로마 제국은 광대한 불과 유황의 호수에 파묻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 제국은 깊은 동굴들과 유황 광산들, 그리고 수많은 화산들이 있었는데, 특히 에트나 화산, 베수비우스 화산, 리파리 화산 등이 상상력을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장래에 이 사건이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기대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인들은 로마 제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재앙을 임박한 세계 종말의 징조로 믿었다고 합니다.

로마의 대화재에 관한 이미지 (by https://www.archeoguidaroma.com/blog/great-fire-rome)

 

  영겁의 형벌에 바쳐진 이교도들

 저자는 그리스도 교회가 예수의 탄생 이전에 활동했던 소크라테스나 고대의 몇몇 현인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었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탄생 이후에 신의 진리를 모르거나 믿지 않으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종교적 신앙의 차이 때문에 혈연과 우정이 깨지는 경우가 자주 있었으며, 내세에서 승리하리라는 기대에서 기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사후의 삶(by https://alc.net.au/christianity-beliefs-on-hell-afterlife-judgment-damnation-explained/)

  종종 두려움으로 인해 개종했던 이교도들

 다신교도들은 영겁의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협박에 겁을 집어먹고 개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공포심은 그들의 신앙과 이성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일단 설득하고 나면 그리스도교인이 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현명한 길이라고 확신시키기는 쉬운 일이었다고 합니다.

천사가 영혼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모습(by 16세기 히에로니무스 보쉬)

  세 번째 요인, 초기 교회의 기적의 힘

 3. 현세에서조차 그리스도교인들의 초자연적 능력은 신도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며, 이교도들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능력에는 방언의 능력과 환상 및 예언의 능력, 마귀를 쫓는 능력, 병자를 고치는 능력,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 등 여러 가지 이적(기적)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방언의 능력(배운 적 없는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이레나이우스(갈리아 지방의 주교) 본인은 갈리아 원주민의 방언을 알아듣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레나이우스( 가톨릭 , 정교회 , 성공회 등 기독교 내 대부분의 주류 종파에서는 성인 으로 공경하고 있다. )

 호교론자(종교 교리 옹호자)들은 고통받고 있는 불행한 사람의 육체에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흔한 일이었는데도 종교적 승리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으며,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입증해 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2세기 말경인 이레나이우스의 시대에는 죽은 자의 부활도 별로 신기한 사건으로 여겨지지 않았을 정도로 자주 일어났으며, 살아난 후에도 오랫동안 생존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부활의 교리를 조롱했던 철학자들의 회의론을 설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그리스의 한 귀족이 안티오크의 주교 테오필루스에게 죽음에서 부활한 자를 한 명이라도 목격하고 인정할 수 있다면 즉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나, 테오필루스가 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도전에 응하지 않은 것은 놀랍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안티오크의 주교 테오필루스( 성 베드로의 뒤를 이어 안티오크의 여섯 번째 주교 )

  논쟁의 대상이 된 기적의 힘에 대한 진실

 초기 교회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기적들은 저자가 살았던 18세기에는 공격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공격은 대중에게는 호평을 받았지만, 유럽의 개신교회와 영국의 성직자들에게서는 악평을 받았습니다. 
 저자는 역사가로서 기적이 행해졌던 기간의 범위를 정확하게 규정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며, 끊임없이 이어져온 기적에 대해 어느 시기는 믿고 어느 시기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합리적인 사람들은 기적의 중단을 확신하는 법이기 때문에, 기적 능력에 대한 주장들이 갑자기 또는 점차로 그리스도 교회로부터 철회되기 시작한 어떤 시기가 있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리스도교인들이 기적 능력을 상실한 후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주장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데서 그들의 무신경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그리스도교인들의 행태를 어떤 화가가 자신의 모사품에 라파엘로나 코레조의 이름을 써넣는다 하더라도 이런 사기 생각은 금세 탄로가 나서 배척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시적인 기적의 사용

  2~3세기에는 신자들의 관대한 기질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진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지만, 저자가 살았던 18세기에는 이성적인 사고로 신의 가시적 행동인 기적을 인정할 마음의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네 번째 요인,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의 미덕

 4. 저자는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순수하고 엄격한 생활을 하게 만든 두 가지 동기, 즉 과거의 죄에 대한 회개와 자신들이 소속된 교단의 평판을 지키고자 하는 소망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들의 회개의 효과 

 다신교도들은 어떠한 속죄도 인정받을 수 없었지만, 그리스도교인들은 물로 세례 받아 과거에 저지른 죄를 씻어 낼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의 유명한 성자들 가운데 대다수가 세례를 받기 전에는 버림받은 죄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인정했다고 합니다. 세례를 받아 죄를 씻고 영광스러운 영생의 희망을 갖게 된 사람들은 덕행을 쌓고 참회를 하는 생활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의 평판에 대한 관심

  새로운 개종자가 신도로서 정식으로 받아들여지면 과거와 같은 죄악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자신들의 평판 때문에 자신과 동료들의 행동을 큰 관심을 가지고 주시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리스도교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를 제외하고는 처형당한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박해를 받을수록 더욱더 서로의 결속을 긴밀하게 다져 갔습니다. 그러나 상호 간의 사랑과 의심 없는 신뢰로 인해 불성실한 동료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박해받는 그리스도교인

  교부들의 도덕성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품행은 매우 존경할 만한 것이었고, 이 시기 주교들이나 박사들의 성서 연구도 헌신적으로 행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타고난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이해관계만을 중요시하는 세속적 철학자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 본성의 원칙들

 저자는 쾌락의 욕구와 행동에 대한 욕구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쾌락욕구는 예술과 학문으로 승화되고 매력적인 사회적 교제로 개선되며 검약, 건강, 평판에 해한 적절한 관심으로 올바르게 영향을 받을 경우, 개인적인 삶의 상당 부분을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행동욕구는 휠신 더 강력하며 동시에 좀 더 문제가 많은 성정으로 분노, 야심, 그리고 복수심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절제심과 자비심의 영향을 받게 되면 오히려 모든 미덕을 실천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호감이 가거나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것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쾌락과 사치를 경멸한 초기 그리스도교도들

 엄격한 교부들은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지식들을 경멸했으며 모든 경솔한 언동은 신께서 주신 언어 능력을 남용하는 범죄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천사들의 완전성을 모방하려는 헛된 야심을 품고 모든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즐거움을 경멸하거나 경멸하는 척했다고 합니다. 
 교부들은 사치를 책망할 때는 극도로 엄밀하고 세심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경건한 분노를 일으킨 온갖 물건들 가운데 일부를 열거하면 가발, 흰색이 아닌 의복, 악기, 금이나 은으로 만든 항아리, 깃털 베개(야곱은 돌을 베고 잤음), 흰 빵, 외국산 포도주, 공개된 자리에서의 축사, 온수 목욕, 수염 깎기 등이 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교부)는 수염을 깎는 행위는 자기 얼굴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창조주의 작품을 개선하려는 불경스러운 시도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금기는 부유층과 상류층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이어지게 되었지만, 하류층 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미덕은 초기 로마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빈곤과 무지 덕분에 지켜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도교인의 결혼식

  결혼과 순결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의 생각

 교부들의 엄격한 금욕주의도 모든 향락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만약 아담이 창조주에게 순종했더라면 동정을 유지한 채 영생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며, 낙원에는 어떤 무해한 증식 방법을 통해서 번성한 순결하고 영원히 죽지 않는 인간들이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부부의 결합에 관해서 상세하게 부과한 온갖 별난 계율들을 열거하면 신랑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것이고 신부는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한 결합과 유사한 것으로 승화되었으며, 이혼이나 죽음으로도 분리될 수 없다고 선언되었습니다. 재혼은 합법적 간통이라는 낙인이 찍혔으며, 그리스도 교회가 부여하는 모든 명예와 특전을 박탈당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결혼을 용인할 수 있는 결함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독신 생활이야말로 신의 완전성에 다가가기 위한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고행자(고통스러운 실천을 한 사람)들은 육신의 쾌락을 상실한 대신 영적인 자부심으로 보상받았고, 이교도들조차도 고행자들의 희생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이런 고행은 나중에 그리스도교에 이익을 가져다주며 상쇄될 수 있었습니다.
 

  국방과 행정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의 반감

 그리스도교도인들은 속세의 쾌락 못지않게 속세의 업무에도 반감을 가졌다고 합니다. 고지식한 그들은 관리들의 화려한 겉치레나 공적인 생활에서의 적극적인 경쟁을 싫어했습니다. 또한 공동 사회 전체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적인 행위 또는 적대적인 행위를 한 사람이더라도 법이나 전쟁으로 심판하여 인명 피해를 입히는 것이 합법적이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인들은 이러한 제도들이 현 체계 내에서는 필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동조하고, 이교도 총독들의 권위에도 기꺼이 복종했습니다. 그러나 무저항적인 복종을 하면서도 제국의 민사 행정이나 국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공공의 복지를 위한 의무 수행을 소홀히 하고 심지어 범죄적이라고 할 만큼 무시했기 때문에 이교도들에게서 온갖 멸시와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교도들은 사방에서 침략해오는 야만족을 방어해야 하는데 인명 피해에 대한 우려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면 로마 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묻곤 했다고 합니다. 

전투중인 로마군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종교적 양심에 따라 국가와 군대의 온갖 영예로운 직책들에서 배제되었다기 보다는 그러한 복무를 면제받기 위한 구실을 마련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호교론자들은 인류 전체의 개종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미 전쟁, 정부, 로마 제국, 그리고 이 세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고 기대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