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정치가. 군인. 레무스와 쌍둥이 형제이며 라틴 민족을 해방시킨 사람. 재위 38년째 되던 해, 염소늪에서 행방불명되어 퀴리누스 신이 되다. 미천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그리스의 여러 민족을 하나로 단결시켜 로마를 세웠다.
로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함락당한 트로이에서 도망친 사람 중에 로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있었는데, 육지에 도착한 그녀는 바다에서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일행이 타고 왔던 배를 태워없애버렸고, 일행은 어쩔 수 없이 팔라티움 산 주변에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오딧세우스와 키르케의 아들 로마누스가 건설했다는 설과 라틴 족의 왕 로무스가 세운 도시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믿을 만하다고 주장하는 설은 로물루스가 이 도시를 처음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로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로물루스의 과거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분분하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역사가 프로마티온의 신화와 같은 이야기도 존재하는데요, 알바의 왕 타르케우스의 집 가마솥에 남근이 생겼는데 그 남근과 동침한 사람의 아이가 명성을 얻게 되리라는 신탁을 들은 타르케우스 왕은 자신의 딸을 그 남근과 동침시키려 하였으나, 딸은 시녀를 대신 보내버립니다.
이를 알게 된 타르케티우스 왕은 화가 나서 두 사람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여신 헤스티아가 그의 행동에 대해 경고를 했기 때문에 그녀들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궁궐 깊은 곳에 가두고 옷감 짜는 일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는 그일이 끝나면 적당한 신랑감을 구해 결혼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다른 시녀를 보내 짜놓은 옷감을 풀어놓게 합니다.
결국 젊은 시녀는 쌍둥이를 낳게 되었고, 왕은 테라티우스라는 사람을 시켜 쌍둥이를 없애려고 했지만, 테라티우스는 아이들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강가에 놔두고 왔다고 합니다. 그후 늑대가 나타나 두 아이를 보살폈고 성장한 두 아이들은 타르케티우스 왕을 죽였다고 합니다.
로물루스에 관하여 이 책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알바에서 대대로 군림해오던 아이네아스의 자손이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에게 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아물리우스는 트로이에서 온 황금을 받고, 누미토르는 왕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물리우스가 자신의 재산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워서 누미토르의 왕권을 빼앗게 됩니다. 아물리우스는 누미토르의 딸이 아들을 낳을 것을 우려해서 베스타 여신의 사제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아물리우스의 우려은 현실이 되어 누미토르의 딸은 체구도 크도 아주 잘 생긴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됩니다. 아물리우스는 화가 나서 파우스툴루스라는 신하에게 아이들을 갖다 버리라고 합니다. 파우스툴루스는 강가에 아기가 든 바구니를 놓고 가버립니다. 바구니는 게르만스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고, 늑대가 와서 젖을 먹여주여주고, 딱따구리가 먹이를 날라주며 키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동물들을 전쟁의 신 마르스의 심부름꾼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한편 아물리우스의 돼지치기인 파우스툴루스가 누미토르의 지원을 받으며 쌍둥이를 데려다 길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이름은, 두 사람이 야수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데서 젖꼭지(루마)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훌륭한 혈통인 둘은 순식간에 성장하여 건강한 신체와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게 됩니다.
그러나 둘은 왕의 신하, 감독관, 지휘관들로부터 무시를 당합니다.
어느 날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의 목동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고, 화가 난 누미토르는 빈민과 노예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한 듯 했습니다.
로물루스가 제사를 드리고 있을 때 레무스와 누미토르의 양치기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고, 레무스는 누미토르에게 잡혀가게 되었는데, 레무스의 힘과 자태에 경탄한 누미토르는 레무스의 신분에 대해 묻게 되었고 자신의 외손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시를 받고 갇혀 있는 딸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궁리합니다.
한편 파우스툴루스는 레무스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로물루스에게 두 형제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말해줍니다. 파울스툴루스는 쌍둥이가 있었던 바구니를 들고 쌍둥이의 외할아버지인 누미토르에게 가려고 했으나 호위병들에게 잡혀서 끌려갑니다.
파우스툴루스는 갖은 고문을 당하는 상황에도 비밀을 지켰지만 쌍둥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자백합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알바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축을 돌보며 살고 있다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의심이 많았던 아물리우스는 누미토르의 친구을 누미토르의 집에 보내 누미토르가 쌍둥이에 대해 알고있는지 알아보게 합니다. 누미토르의 친구는 누미토르가 레무스와 포옹하며 혈육의 정을 나누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로물루스는 아물리우스에게 증오심이 많은 사람들을 모아 공격을 준비합니다. 한편 레무스는 성안에 있는 시민들을 이끌어 반란을 일으킵니다. 성 안팍에서 공격을 하자 당황한 아물리우스는 결국 붙잡혀 죽고 맙니다.
아물리우스가 죽었으나 외할아버지 누미토르가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었던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할아버지에게 통치권을 양보하고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영예를 드린 뒤 자신들이 자란 땅으로 돌아가 도시를 세우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의 기반이 닦여지게 됩니다. 형제는 노예나 채무자, 심지어 살인자마저 모두 법으로 보호해줍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도시는 사람들로 가득차게 됩니다. 로마의 첫 세대는 천 명이 약간 안되었다고 합니다.
도시를 건설할 때 장소에 대한 의견이 충돌하였는데, 로물루스는 로마 쿼드라타에, 레무스는 아벤티누스 언덕에 있는 리그나리움에 도시를 건설하고 싶어 합니다.
둘은 새점을 쳐서 결정하기로 하였고, 로물스가 정한 장소에 독수리가 12마리가 날아와서 레무스가 정한 장소의 6마리 보다 우세하여 로물루스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레무스는 새점을 칠 때 로물루스가 속임수를 쓴 것을 알고 화가 나서 로물루스의 공사를 방해합니다. 심지어 도랑 사이를 마구 뛰어다니면서 로물루스를 놀리기도 합니다. 이 일로 싸움이 벌어졌고, 레무스와 파우스툴루스, 피우스툴루스의 동생인 플리스티누스도 죽었다고 합니다. 로물루스는 이들을 레모니아 산에 묻어준 뒤 도시 건설을 진행합니다.
로마 시가 건설되자 로물루스는 보병 3천 명과 기마병 3백 기의 군단을 조직합니다. 그리고 이 군단을 '레기오'라 부릅니다.
민중은 '포푸루스', 참의원을 '파트리키안'이라 부르고 참의원이 여는 집회를 원로원이라고 불렀습니다.
귀족은 보호자라는 뜻인 '파트론'이라 부르고, 대중은 피보호자라는 뜻인 '크리엔트'라고 불렀으며 서로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파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로물루스는 도시를 세운 지 4달만에 여자를 납치해 오는 사건을 벌였는데 부녀자들을 미끼로 사비니 족과 동맹할 실마리를 마련하려는 의도에서라고 합니다. 책에서는 두 종족을 하나로 융합하려는 목적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비니 족이 로마 인과 전쟁을 치른 후 화해 조약을 맺을 때, 특별조항으로 사비니 족의 여자는 실을 잣는 일 외에는 어떠한 집안일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신부를 안고 침실로 들어가는 풍습은 사비니 여자들이 스스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강제로 붙들려 온 것에서 유래한 풍습이라고 합니다.
사비니 족의 여자를 납치해간 로물루스를 증오한 케니넨시아 족의 아크로이라는 왕은 대군을 이끌고 로물루스와의 전쟁을 치르러 갔지만, 로물루스에게 패해 목숨을 잃었고 도시를 점령당합니다. 로물루스는 집만 파괴했을 뿐 주민들은 해치지 않고 로마로 데리고 가서 시민으로 만들어 줍니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커다란 도시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포용정책이었다고 합니다. 사비니 족이 전쟁을 준비하는 사이, 피테나이, 크루스투메리움, 안템나 등에 사는 부족들이 힘을 합쳐 로마를 공격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남겨진 사비니 족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타티우스를 장군으로 내세워 로마로 쳐들어갔으나 카피톨리누스 성벽 때문에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에서는 타르페이우스 장군이 군을 지휘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타르페이아라는 딸이 있습니다. 그녀는 사비니 족이 끼고 있던 금팔찌에 눈이 멀어 적군인 타티우스 장군을 돕기로 하였고 한 밤중에 성문 하나를 열어 줍니다.
타티우스 장군은 타르페이아의 도움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녀의 배반행동에는 증오심이 생겼습니다.
타티우스는 방패에 금팔찌를 넣고 그녀에게 던졌으며, 병사들에게도 그녀에게 아낌없이 금팔찌를 주라고 명령합니다. 결국 그녀는 금팔찌와 방패에 맞아 죽게 됩니다.
사비니 족이 카피톨리누스 언덕을 점령한 것에 격노한 로물루스는 타티우스 군과 여러 차례 싸움을 계속합니다.
싸움 도중 로물루스가 머리에 돌을 맞아 쓰러지는 바람에 로마군들은 팔라티움 산으로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일어난 로물루스가 병사들에게 다시 싸우라고 소리쳤지만 돌아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로물루스가 유피테르에게 기도를 하자, 병사들은 다시 싸우기 시작했고 베스타의 신전 주변까지 사비니 족을 격퇴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다시 양편 군대는 두 번째 격전을 준비했는데, 예전에 납치되어 온 여자들이 한탄의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중 헤르실리아라는 여인은 이미 가족이 된 로마인들과 싸운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잔인한 짓을 하는 것이라고 호소합니다. 두 군대는 잠시 휴전을 하였고, 사비니 족 군인들은 로마에 사는 사비니 족 친척 여인들을 방문했는데 그 곳에서 잘 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두 군대는 코미티움이라는 곳에서 휴전 조약을 하게 됩니다.
로마 인과 사비니 족은 같은 시내에서 함께 살고 시의 이름은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로마라 하고 로마 주민은 타티우스의 고향이름 따서 크리테라고 부리기로 합니다. 또한 로물루스와 타티우스는 주민들을 다스리는 공동 왕이자 장군이 됩니다.
두 왕은 저마다 백 명의 원로원 의원들과 회의한 다음, 모두 한곳에 모여 회의를 가졌다고 합니다. 타티우스는 유노 모네타의 신전이 있는 곳에 살았고, 로물루스는 카쿠스의 아름다운 해변의 돌계단이라고 부르는 곳 주변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두 민족은 서로 기념 행사에도 참석합니다.
전쟁을 멈추게 한 여자들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마트로날리아와 카르멘탈리아라는 새로운 행사(제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타티우스가 왕좌에 오른 지 5년 째 되던 해에 로물루스와 불화의 싹이 튼 사건이 생깁니다. 타티우스의 친구와 친척들 중 몇 사람이 라우펜툼에서 로마로 오는 사절단을 공격해 금품을 빼앗으려고 하다가 저항하는 사절단을 죽이게 됩니다. 로물루스는 그들을 즉시 처벌해야 한다고 했는데 인정에 이끌린 타티우스는 그냥 넘어가려고 합니다. 화가 난 죽은 사절단의 친구들은 타티우스를 죽입니다.
로물루스는 타티우스를 정성스럽게 매장해주었지만, 타티우스를 죽인 살인자들은 처벌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로물루스는 타티우스가 죽은 것을 기뻐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로마에서 커다란 재앙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타티우스를 죽인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도시는 곧 죄인들을 체포해 처벌했고 그 이후로 모든 재앙이 걷히지 시작했다고 합니다.
로마에서 질병의 위험이 가시기도 전에 그 틈을 타서 카메리움 인들이 로마를 공격해 옵니다. 그러나 로물루스는 군사들을 이끌고 600명의 적군을 죽이고 카메리움을 빼앗습니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운 지 16년 동안 로마가 강대해지자 근처의 작은 나라들은 로마에 복속되었고, 힘을 가진 나라들은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 중 베이엔테스가 피데나이를 돌려달라는 구실로 선전포고를 합니다. 로물루스가 이끈 로마군은 2천명을 잃었고, 상대군은 8천명의 목숨을 잃게 됩니다. 베이엔테스는 로마와 휴전조약을 맺게 되었고, 이 전쟁이 로물루스가 치른 마지막 전쟁이라고 합니다.
로물루스는 영광의 자리에 올라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오만방자해졌습니다. 모든 일들은 로물루스가 결정한 대로 행해집니다.
로물루스는 전쟁에서 얻은 토지를 군인들에게 마음대로 나누어 주기도 하고, 원로원의 의견도 묻지 않고 베이엔테스에서 잡아온 인질들을 돌려보내기도 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로물루스가 갑자기 행방불명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로물루스는 갑자기 사라졌고, 몸의 일부나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귀족들은 시민의 수호신이 된 로물루스를 숭배하고 경외하라고 했으나, 사람들의 일부는 그들이 로물루스를 죽여놓고 시민들을 농락한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로물루스와 친한 친구 사이였던 율리우스 프로쿨루스라는 사람이 로물루스를 만났는데, 로물루스가 자신은 퀴리누스 신이 되어 로마 시민을 보호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합니다.
로물루스의 이름을 딴 퀴리누스 산위에는 그를 모신 신전이 있다고 합니다. 로물루스가 사라진 날은 왕위에 오른 지 38년째 되던 해이고, 그의 나이는 53세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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