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크 영웅전_테세우스(홍사중 옮김)
본문 바로가기

위대한 저서 읽기/플루타르크 영웅전

플루타르크 영웅전_테세우스(홍사중 옮김)

테세우스(THESEUS)

 

아테네 정치가·군인. 아테네 건설자. 펠레폰네소스 지방 펠로프스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이게우스, 어머니는 아이트라. 헤라클레스와는 사촌. 바다의 신 포세이돈 아들이라고도 한다. 영웅심이 강하고 용감했으며, 그리스에서 폭군을 몰아내고 여러 차례 큰 사업을 일으켰다.

플루타르크는 테세우스 이야기에서 신화적인 부분은 빼고 이성적으로 납득이 가는 역사만 기록하려 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는 당부 또한 하고 있습니다.

테세우스와 로물루스는 사생아이면서, 신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얻었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한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공통점도 있었는데, 여자를 힘으로 얻은 점, 불행한 가정, 친척들과의 불화, 국민들과의 불화를 얻었다는 점입니다.  

테세우스의 탄생에 관한 일화는 이렇게 전해집니다.

아이를 갖고 싶어한 아이게우스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아테네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여자와 동침하지 말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신탁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게우스는 트로이젠으로 가서 피테우스에게 신탁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합니다. 

신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왕이시여,

아테네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술 주머니를 풀지 마시오.

이는 아테네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의미이고, 술을 마시면 여인과 동침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피테우스는 이해했습니다. 

피테우스는 자신의 딸을 아이게우스와 동침시켰는데, 아이게우스는 나중에야 그녀가 피테우스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게우스는 떠나면서 그의 칼과 신발을 큰 돌 밑에 숨겨두면서 아들이 태어나 힘센 청년으로 자랐을 때, 자신이 숨겨둔 칼과 신발을 가지고 몰래 자기를 찾아오게 하라고 아이트라에게만 일러둡니다. 그때 아이게우스는 형제인 팔라스의 50명의 아들들이 자식 없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후계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버지검을 찾는 테세우스(니콜라 푸생, 1638년경)_콩데미술관(프랑스)

아이트라는 아이게우스가 기대한 것처럼 아들을 낳았고, 테세우스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테세우스는 외할아버지인 피테우스 슬하에서 자랐으며, 콘디나스라는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때 그리스에서는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가서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 신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테세우스도 성년이 되어 머리카락을 잘라 바쳤습니다. 

테세우스는 아반테스 족처럼 앞머리만 잘라서, 이 머리형을 테세우스 형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호전적인 아반테스 족은 전쟁에서 머리를 잡히는 일이 없도록 앞머리를 잘랐다고 합니다. 

그 유명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이런 이유로 모든 군사들에게 수염을 깍도록 명령했다고 합니다.

아이트라는 아이게우스가 바위에 숨겨둔 증표를 아들인 테세우스에게 알려주었고, 테세우스는 아버지를 찾아 나섭니다. 

아이트라와 외할아버지인 피테우스는 안전한 바닷길을 권했으나, 사촌인 헤라클레스를 존경하고 있었던 테세우스는 굳이 위험한 육로를 택하여 길을 떠납니다.

테세우스가 맨 처음 만난 사람은 페리페테스라는 강도입니다. 테세우스는 페리페테스를 물리치고 그가 들고 다녔던 몽둥이를 승리의 증표로서 자신의 무기로 삼습니다.

두 번째 물리친 사람은 시니스였는데, 테세우스는 시니스가 사람들을 죽인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를 죽입니다. 시니스는 소나무 가지를 휘게 만드는 재주로 사람들을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죽게 하였다고 합니다.

시니스와 테세우스

테세우스는 시니스의 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고, 멜라니포스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테세우스는 크롬미온 지방을 지나가면서 파이아라는 사나운 멧돼지를 잡아 죽입니다.

메가라에서는 여행자의 물건을 빼앗고 절벽아래 떨어뜨려 죽인다는 스키론을 죽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키론은 오히려 도둑을 잡아 없앤 선량한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또한 테세우스가 스키론을 죽인 것은 그가 메가라 사람들 소유였던 엘레시우스 지방을 공격했을 때의 일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합니다. 

테세우스도 사람을 죽일 때, 헤라클레스가 했던 방식대로 악당들이 사람들을 괴롭혔던 방식대로 악당들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테세우스가 우여곡절 끝에 아테네에 도착했을 당시 아테네를 다스리고 있었던 아버지 아이게우스왕도 메데이아라는 여자로 인해 내분과 혼란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메데이아는 테세우스가 아이게우스의 친아들임을 한눈에 알아보았으나. 노쇠한 왕인 아이게우스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를 부추겨 테세우스를 독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독살하려고 초대한 파티에서 테세우스는 고기를 자르기 위해 아이게우스가 징표로 숨겨두었던 칼을 보란듯이 꺼내었고, 아이게우스는 테세우스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봅니다. 이이게우스는 독이 든 음식들을 쏟아버리고 시민들을 불러모아 파티를 엽니다. 

메데이아, 아이게우스와 테세우스

아이게우스에게는 테세우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동생 팔라스의 아들들 중에 후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왕위에서 멀어진 팔라스의 아들들은 전쟁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팔라스군의 전령 레오의 밀고로 매복병들이 테세우스에 의해 전멸됨으로써 전쟁에서 지게 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테세우스는 민중의 지지를 얻고 싶어서 테트라폴리스 주민들에게 큰 해를 끼치던 황소를 잡아 델포이 신전에 제물로 바칩니다. 

크레타섬은 미노스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 안드로게오스가 아케타에서 살해된 것이 아테네가 꾸민 일이라고 생각해서 아테네를 상대로 전쟁을 했습니다. 

그당시 아테네는 흉작과 전염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신탁을 청한 아테네는 미노스 왕과 화해해야 한다는 신탁을 받고 크레타와 휴전을 하고 9년마다 소년과 소녀 각각 7명을 크레타로 보내기로 약속했습니다. 제물로 바쳐진 소년 소녀들은 미궁 라비린토스에 갇혀서 괴물 미노타우루스의 먹이가 되거나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소년 소녀들은 미노스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라 크레타에서 죽을 때까지 노예로 지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크레타로 보내진 소년 소녀들의 운명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보호자도 없는 미지의 땅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얼마나 참담했을까요?

세 번째로 크레타에서 세 번째로 공물을 받으려는 배가 도착했을 때, 테세우스는 자진하여 크레타로 가겠다고 하여 민중에게 감동을 줍니다.  왕의 조건 중에는 미궁 속의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면 앞으로 공물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노타우루스를 죽이는 테세우스

아이게우스는 테세우스에게 흰 돛을 건네주면서 살아 돌아오면 이 돛을 달고, 그렇지 않으면 검은 돛을 그대로 단채 돌아와 슬픈 소식을 알리라고 말합니다. 

배가 크레타 섬에 도착했을 때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녀는 테세우스가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삼으로 만든 실타래를 줍니다.

미노스 왕은 크레타에서 용맹하기로 유명한 타우루스를 은근히 질투하고 있었는데, 경기에서 테세우스가 타우루스를 쓰러뜨리자 기뻐하며, 테세우스에게 소년 소녀를 돌려주며 더 이상 공물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테세우스는 델로스 섬에서 경기를 개최한 후, 다시 배를 띄워 아티카 항구에 이르렀는데도 승리에 들뜬 테세우스 일행은 흰 돛을 다는 것을 깜빡하고 잊어버리고 맙니다.  멀리서 검은 돛을 달고 오는 배를 보고 낙담한 아이게우스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맙니다.  아들이 없었던 아이게우스는 왕위를 지킬 희망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아이게우스가 빠진 바다를 에게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내용입니다.

테세우스는 아이게우스 왕이 죽은 뒤 사람들에게 약속했던 대로 왕의 정치를 폐지하고 새로운 정치체계를 발표합니다. 이는 아테네에서 최초로 민주정을 시작했다는 데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외지에서 아테네로 이주해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했으며, 공화국을 귀족, 농민, 공인의 세 계급으로 나눕니다.

그는 화폐를 주조함에 있어서도 왕의 얼굴 대신 황소를 새겨넣게 합니다. 특권의식을 표출하는 것에 조심스러워 했던 테세우스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테세우스는 아마존 족의 여왕 안티오페(또는 히폴뤼테)와 한동안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서로 좋아서 살았다는 견해와 납치해서 살았다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신화는 갖가지 추측과 과장이 첨가되어서 진실을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 기록에서 보면 같은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내용이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각각의 사건의 진실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겠습니다. 

크리데모스의 기록에 의하며, 아마존 족의 여왕을 납치했다는 이유로 아테네와 아마존 족의 전쟁이 있었는데, 전쟁이 4개월째 접어들었을 때 히폴뤼테(안티오페)의 중재로 휴전이 성립되었다고 합니다. 

안티오페는 아마존 족의 부상자들을 몰래 치료해 주고, 죽은 사람은 잘 묻어주었다고 합니다.

테세우스가 에페이로스에 몰로시아의 왕 이도메네우스의 딸을 페이리토스에게 아내로 얻어주기 위해 떠났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 사이, 메네스테우스라는 사람은 아테네 사람들을 선동하여 테세우스를 고립시키려고 하였고, 테세우스가 납치하려고 했던 헬레네의 오라비인 카스트로와 풀룩스가 쳐들어와 메네스테우스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테세우스가 석방되어 돌아와보니 자신의 세력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자신의 땅도 헤라클레스가 차지하여 이름도 헤라클레아라고 바뀌어 있었습니다. 

테세우스는 다시 정치에 힘써보려고 했으나 실패하였기 때문에 아들들은 유비아에 있는 엘레페노르에게 보내고, 자신은 아버지의 소유지가 있는 스키로스로 떠납니다. 

테세우스는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에게 자기가 거주할 토지의 반환을 요구하였는데, 리코메네스 왕은 토지를 보여준다고 하면서 그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죽였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테세우스가 발을 헛디뎌 죽었다고도 합니다. 

테세우스는 잊혀졌고, 메네테우스는 아테네의 왕이 됩니다. 테세우스의 아들들은 메네테우스가 죽자 아테네로 돌아와 왕위를 되찾았다고 합니다.

테세우스를 추모하여 아테네에서 지내는 제사는 크레타에서 소년·소녀들을 구출해왔던 피아네프시온 달(아티게력: 10 또는 11월) 8일에 올려진다고 합니다. 

 

#테세우스 #플루타르크영웅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