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하는 여인들(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작품 소개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들이 전사하자 테바이인들은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그들의 시신을 돌려달라는 아르고스 측 요구를 거절하는데, 이는 그리스인들의 신성한 관습에 위배되는 행위다. 그러자 이들 장수들의 어머니들이 원정을 주도 아르고스왕 아드라스토스와 함께 아테나이 근처에 있는 엘레우시스에 있는 테메테르 여신의 신전을 찾아가 마침 그곳에서 기도하던, 아테나이 왕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에게 자식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탄원한다. 테바이인들의 전령이 나타나 이들을 넘겨달라고 위협하듯 요구하지만, 테세우스가 단호히 거절하고 무력으로 시신들을 찾아온다. 그리하여 장례식이 치러지자 일곱 장수 중 한 명인 카파네우스의 아내 에우아드네가 남편의 화장용 장작더미에 뛰어들어 죽는다.
등장인물
아이트라 테세우스의 어머니
코로스 일곱 장수의 어머니들과 그 하녀들로 구성된
테세우스 아테나이 왕
아드라스토스 아르고스 왕
전령 테바이인들의
사자
에우아드네 일곱 장수 중 한 명인 카파네우스의 아내
이피스 에우아드네의 연로한 아버지
아들들 일곱 장수의
아테나 여신
장소 아테나이 근처의 엘레우시스
(엘레우시스에 있는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 앞. 제단 앞에 아이트라가 앉아 있고, 그녀 주위에는 아드라스토스와 코로스와 전사한 일곱 장수들의 아들들이 탄원자의 나뭇가지를 들고 둘러서 있다)
부연설명을 드리자면, 아드라스토스는 아르고스의 왕으로서 자신의 사위인 폴뤼네이케스와 함께 테바이를 공격합니다. 테바이를 공격한 이유는 사위 폴뤼네이케스는 테바이왕 에테오클레스의 동생으로 아버지 오이디푸스왕이 테바이를 떠나자, 두 아들이 1년씩 교대로 테바이를 통치하기로 하였지만, 에테오클레스가 왕위를 내놓지 않자 폴뤼네이케스는 아르고스로 망명하여 아르고스의 왕 아드라스토스의 사위가 되었고, 아르고스왕 아드라스토스의 지원 아래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형이 다스리고 있는 테바이를 공격하게 됩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 오이디푸스왕이 테바이를 떠날 때 아버지가 떠나는 것을 만류하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오이디푸스는 두 아들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결국 두 형제가 벌인 전쟁에서 일대일 격투를 하여 승부를 결정하려고 하였는데 아버지 오이디푸스의 저주때문이었을까요... 둘은 서로를 찌르고 죽고 맙니다. 테바이를 공격한 아르고스의 용맹한 일곱 장수도 모두 전쟁에서 죽게 되는데 테바이에서 죽은 시신을 돌려주지 않아 그의 부모와 어린 아들들이 아테나이에 가서 시신을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탄원하고 있습니다.
테바이를 공격한 아르고스의 일곱장수
극이 시작되면 아테나이 왕 테세우스의 어머니인 아이트라가 등장하여 아르고스에서 온 연로한 부인들이 아들인 테세우스에게 부탁하여 전쟁에서 사망한 자신들의 아들을 수습할 수 있게 해달라고 탄원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연로한 부인들은 아이트라에게 아들을 잃은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테세우스에게 아들들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게 부탁해 애원합니다.
코로스(우3) 아무리 곡을 하고 또 곡을 해도 성에 차지 않는구나. 마치 가파른 절벽에서 샘물이 흘러내리듯, 내 눈물은 도무지 마를 줄 모르는구나. 하긴 여자들이란 원래 자식들이 죽으면 통곡하기 마련이지. 아아, 죽어서 이 고통을 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테세우스가 나타나서 제단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인 아이트라가 눈물을 흘리는 연로한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묻습니다.
아이트라는 연로한 부인들은 테바이에서 죽은 장수들의 어머니이고, 문간에서 탄식하고 있는 사람은 아르고스왕 아드라스토스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소년들은 죽은 장수들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아드라스토스왕은 테세우스왕에게 자신이 아테나이에 탄원하러 온 이유를 설명합니다.
아드라스토스왕은 자신이 전쟁에 패배한 것은 암피아라오스의 뜻을 거슬러 출정한 것이 이유라고 하면서 후회합니다.
(주석) 암피아라오스는 뛰어난 예언자로, 아드라스토스 왕의 주도하에 일곱 장수들이 테바이를 공격하려 하자 이 원정에 참가한 장수들이 아드라스토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사할 것임을 알고 참전을 거절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 에리퓔레가 오이디푸스의 아들 폴뤼네이케스에게서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뇌물로 받고는 그도 종군하기를 요구하자 그는 떠나기 전에 아들 알크마이온에게 자기가 죽은 뒤 어머니를 죽이고 재차 테바이를 공격하라고 유언한다. 암피아라오스는 테바이에서 패주하다가 제우스가 던진 벼락으로 갈라진 땅속으로 삼켜지고, 알크마이온은 어머니를 죽이고 함께 전사한 다른 장수들의 아들들, 이른바 '후계자들'과 힘을 모아 아드라스토스의 주도하에 테바이를 공격하여 함락한다.
암피아라오스는 부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는데 부인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언제나 들어주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인이 받은 뇌물과 자신이 한 맹세로 인해 그는 목숨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종군하게 됩니다.
하르모니아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의 불륜으로 태어난 딸입니다. 아프로디테의 남편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는 하르모니아에게 너무나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어서 선물하였는데, 이 목걸이를 하는 사람은 불행해진다고 합니다. 헤파이스토스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에 대한 분노로 만든 목걸이라 만들 때부터 저주의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르모니아는 테바이를 건국한 카드모스와 결혼하는데 하르모니아의 후손들이 계속 불운을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금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하르모니아의 목걸이
헤파이스토스에 놀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Alessandro varotari, 1631)
아드라스토스는 무릎을 꿇고 테세우스의 무릎을 껴안고서 아리고스 장수들의 시신들을 찾아줄 것을 탄원자로서 애원합니다.
그는 장수들의 연로한 어머니들이 먼 길을 온 것을 봐서라도 자신들을 동정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드라스토스가 아테나이에 와서 부탁하는 이유는 스파르테는 변덕이 죽 끓듯 하고, 다른 나라들은 작고 약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테세우스는 승리에 눈이 멀어 여러가지 사항을 체크하지 못한 아드라스토스를 나무라며, 아드라스토스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전쟁에서 패했으니 도와줄 수 없다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아드라스토스 왕이시여, 나는 내 과오를 심판해줄 이나, 내가 잘못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이를 벌하고 질책할 이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고자 온 것이오. 그대가 원치 않는다면 나는 그대의 결정에 따라야겠지요. (중략)
젊은 테세우스의 태도에 나이 많은 아드라스토스 왕은 자존심이 많이 상한 것 같습니다.
일곱장수의 어머니들로 구성된 코로스들은 테세우스에게 아들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눈물로서 호소합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도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흘립니다.
아이트라 (중략) 내 아들아, 너에게 이르노니, 먼저 신들의 뜻을 살펴라. 신들을 무시하다가 네가 넘어지지 않도록 다른 데서 현명했더라도 이 이유만으로 너는 넘어질 수 있다. 그 밖에 억울한 이들을 용감하게 옹호하는 것이 옳지 않다면 나는 침묵을 지켰겠지.(중략) 네 도시는 노고를 통해 커가고 있다. 그러나 활동이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도시들은 조심만 할 뿐 그들의 시선 역시 눈에 띄지 않는다.(중략) 카드모스의 자손들(테바이)이 지금은 이겼지만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주사위가 다르게 던져질 것이다.
어머니의 말을 테세우스는 아드라스토스와 함께 민회로 가서, 민회에서 승인을 얻으면 정예부대를 이끌고 돌아오겠다고 말합니다.
테세우스 (중략) 효도란 얼마나 멋진 선물입니까! 효도를 다하는 자는 부모에게 준 것을 자식들에게서 돌려받으니까요.
테세우스는 전령에게 테바이로 가서 아르고스의 전사자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요구를 들어주면 선린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자신의 뜻을 전달하게 합니다.
그 때 테바이에서 전령이 옵니다.
테바이에서 온 전령은 현란한 말솜씨로 테세우스와 아르고스 전사자들의 시신의 수습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입니다.
아마도 에우리피데스가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전령과 테세우스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원전을 읽을 기회가 있으면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결국 두 사람은 어떠한 양보도 없이 전쟁을 예고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무대에 아르고스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탄원하는 여인들에게 테세우스의 승전보를 알립니다.
테세우스는 테바이의 성벽 앞에서 시신만 돌려주면 유혈 행위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지만, 테바이왕 크레온이 아무런 대답이 없었기 때문에 두 군대는 결전을 하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테세우스는 용감하게 싸웠고 놀란 테바이 전사들은 성문을 향해 도망쳤다고 전합니다.
사자 테세우스는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멈춰 서서, 자기는 도시를 함락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시신들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러 온 것이라고 외치셨어요. 사람들은 마땅히 그런 종류의 장군을 골라야 해요. 위기 때는 용감하고 백성들의 오만을 싫어하는 그런 장군 말예요. 백성들은 잘나갈 때는 성공이란 사다리의 가장 높은 디딤판까지 오르려다가 누릴 수 있는 행운조차 잃고 마니까요.
사자는 테세우스가 일곱 장수의 시신을 손수 씻고 상여를 준비하고 수의를 입혔다고 전합니다.
코로스(우) (중략) 나는 전에 결혼하지 않는 것이 무서운 고통이라고 믿었었지. 이제야 알겠구나, 가장 확실한 불행은 사랑하는 자식들을 잃는 것임을.
아드라스토스는 일곱 장수 중 카파네우스, 에테오클로스, 힙포메돈, 파르테노파이오스, 튀데우스에 대한 생전의 미담을 테세우스에게 들려줍니다.
아드라스토스는 제우스의 벼락에 맞아 죽은 카파네우스는 신성한 시신으로서 따로 묻고, 나머지 전사들은 하나의 장작더미로 화장하기를 원합니다.
테세우스는 죽은 전사들의 시신을 어머니들이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일그러진 자식의 모습을 보면 괴로워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카파네우스의 아내 에우아드네는 남편이 화장될 때 같이 불 속에 뛰어들려고 왔고, 죽은 전사 중 에테오클로스의 아버지이며, 죽은 카파네우스의 아내 에우아드네의 아버지인 이피스는 자신의 딸 에우아드네를 찾아서 신전까지 옵니다.
이피스는 장작더미가 보이는 절벽 위에 있는 딸 에우아드네를 발견하지만 그녀가 불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이피스는 졸지에 아들과 딸을 모두 잃은 아버지가 되고 맙니다.
이피스 아르고스의 여인들이여, 가련한 내 인생은 결딴났소이다.
아르고스의 전사들의 유골을 들고 오는 어린 아들들도 슬픔에 잠깁니다.
아들들 아버지, 아들이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세요? 제가 언젠가 방패로 무장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게 될까요?
테세우스는 아드라스토스 일행과 작별의 말을 고하고 헤어지려고 하였으나, 아테나 신이 나타나 아드라스토스에게 서약을 받으라고 시킵니다.
아테나 (중략) 그 서약의 내용은 이렇다. "아르고스인들은 이 나라를 적군으로서 침범하는 일이 절대로 없을 것이며, 누구든 이 나라를 침범하면 창으로 제제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서약을 어기고 이 도시로 진격하면, 아르고스인들의 나라는 비참하게 멸망할지어다!"
아테나는 아르고스의 7명의 죽은 전사들의 아들들이 테바이를 재차 공략해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테세우스는 아테네가 시키는 대로 따르겠다고 하였고 드라마는 막을 내립니다.
이 비극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천병희 선생님의 해설을 통해 들여다 보겠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초기의 분위기, 정의의 문제에 대한 관심, 특히 아테나이인들이 스파르테와 동맹관계에 있던 테바이인들에게 패배한 기원전 424년의 델리온(Delion) 전투 후 테바인들이 전사한 아테나이인들의 시신 인도를 거부했던 사실 등이 에우리피데스로 하여금 이 소재에 관심을 갖게 했으리라 추측된다. 최초 공연 연대는 기원전 424년이라는 견해도 있고, 421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른 어떤 드라마보다 시사 문제들이 많이 다루어지는데 참주정치에 대한 민주정치의 우월성, 사회 질서를 보장해주는 것은 교만한 부자들과 반항적인 무산계급이 아니라 중산층이라는 주장, 그리고 교육에 대한 낙관론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테세우스의 말과 행동은 아테나이의 민주정치를 꽃피운 페리클레스를 연상케 한다. 그 밖에 아르고스와의 관계는 스파르테와 교전 중인 아테나이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쟁시기에 씌여진 문학작품은 앞에서도 언급된 바가 있지만 전쟁의 영향에 의해 어떤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자국에 유리한 내용을 작품에 기술함으로써 여론조성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라고 생각되었고, 당시 문학작품이 씌여진 의도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참주정치와 민주정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테바이 전령과 아테나이의 테세우스와의 설전이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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