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아테나이 왕 에렉테우스의 딸 크레우사는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 이온이라는 아들을 낳지만, 아버지의 노여움이 두려워 아크로폴리스 아래에 있는 동굴에 아이를 버린다. 헤르메스가 델포이로 데려간 아이는 그곳에서 신전 하인으로 자란다. 크레우사는 후일 크수토스와 결혼하지만 자식이 없자, 자식에 관해 물어보려고 남편과 함께 델포이를 찾아간다. 아폴론의 명령에 따라, 크수토스는 신전에서 나오다가 맨 처음 만난 사람인 이온을 아들로 받아들인다. 크레우사는 남편이 몰래 낳은 사생아를 입양했다고 믿고는 배신감에 소년 이온을 죽이려다가 발각되어 되레 죽을 위험에 처하자 아폴론의 제단으로 피신한다. 예언녀가 이온을 쌌던 포대기를 보여주자 크레우사는 이온이 자기 아들임을 알아본다. 이어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사건의 전말을 밝힌다. 이온은 크수토스와 크레우사와 함께 아테나이로 돌아가 아테나가 예언한 대로 이오네스족의 선조가 된다.
등장인물
헤르메스 신들의 사자
이온 아폴론과 트레우사의 아들
크레우사 에렉테우스의 딸, 이온의 어머니
코로스 크레우사의 하녀들로 구성된
크수토스 크레우사의 남편
노인 크레우사의 아버지 에렉테우스의 가정교사
하인 크레우사의
퓌티아 델포이의 예언녀
아테나 아테나이의 수호 여신
그 밖에 신전 하인들과 무장한 델포이인들
장소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 앞.
아폴론은 동생인 헤르메스에게 자신과 에렉테우스의 딸 크레우사가 낳은 아이가 동굴에 버려져 있으니, 버려진 자신의 아이를 델포이에 있는 자신의 신탁소로 안고 와, 자신의 신전 입구에다 놓아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버려진 아이는 신전의 예언녀가 측은한 마음에서 거두어 기르게 되고, 성년이 되자 델포이인들에 의해 신전의 성실한 관리인으로 임명됩니다.
한편, 아테나와 칼코돈의 백성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아테나이가 이길 수 있게 도움을 준 크수토스는 그 대가로 아테나이왕의 딸, 크레우사와 결혼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결혼한 지 오래되었으나, 아이가 없어 아폴론의 신탁소를 찾게 되고, 아폴론은 자신과 크레우사의 아들, 이온을 크수토스의 양자로 삼게 하려고 합니다.
이온은 신탁소에 온 크레우사와 만나게 되고, 아폴론의 신탁소을 본 크레우사는 눈물을 보입니다.
이온은 크레우사와 아테나이와 칼코돈의 백성들 사이에 있었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크수토스와 결혼하게 된 이유를 말합니다. 크레우사는 자신이 아폴론과 동침한 사실을 자신의 친구가 겪은 일처럼 말을 하며 그 친구가 낳은 아이의 행방을 신탁에 물어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온은 신의 비행이 드러나는 문제를 신에게 물어서는 안된다고 제지합니다. 그때 크레우사의 남편인 크수토스가 나타납니다. 그는 트로포니오스가 자신과 크레우사가 자식 없이 신탁소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는 말을 합니다.
두 사람이 퇴장하자 이온은 크레우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되뇌이며 신을 원망합니다.
이온 (생략) 하지만 나는 포이보스(아폴론)을 비난하지 않을 수 없어. 그게 무슨 짓이람? 처녀들을 겁탈하고 나서 버리시다니! 몰래 아이들이 죽게 내버려두시다니! 그러지 마십시오. ...우리들 인간들에게 법을 정해주신 그대들 신들께서 스스로 그 법을 어기신다면 어찌 정당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런 일은 일오날 수 없지만, 말을 하자면- 그대와 포세이돈과, 하늘을 지배하시는 제우스깨서 인간들에게 그대들이 저지른 모든 겁탈 사건을 보상해야 한다면, 벌금을 내느라 그대들의 신전이 빌 것입니다. 그대들은 무턱대고 쾌락만 좇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생략)
신에게 도전하는 듯한 도발적인 대사를 쓴 에우리피데스는 어떤 생각으로 이 대사를 썼을지 궁금해집니다.
이온은 시중드는 여인들에게 크수토스가 신전에서 나왔냐고 물어보았고, 여시종들은 아직도 신전에 있다고 말합니다.
잠시 후 신전에서 나온 크수토스는 두 팔을 벌리고 이온에게 '내 아들아, 잘 있으냐?'며 달려갔고 이온은 갑작스런 크수토스의 행동에 뒤로 물러서며 그런 행동을 하는 크수토스에게 불쾌한 감정을 나타냅니다.
자신의 아들이 이온이라는 크수토스와 어이없어 하는 이온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크수토스는 이온에게 자신이 젊은 시절 박코스의 횃불 축제에서 젊은 여성들을 알게 되었고 그 여인 중 한명이 자신의 아이를 잉태했을 거라며, 그 아이가 이온이라고 아폴론이 신탁에서 가르쳐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아버지로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크수토스의 간곡한 증명 끝에 이온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둘은 부자의 연으로서 서로 껴안습니다.
하지만 이온은 이방인의 아들에 사생아라는 약점을 가지고 새엄마와 사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마음을 토로합니다.
이온 (생략) 왕권은 겉은 번지르르하나, 속은 근심으로 가득 차 있지요. 암살당할까 봐 평생을 두려움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 무슨 만족이 있고 무슨 행복이 있겠어요? 저는 왕이 되느니 차라리 평범하지만 행복한 사람의 삶을 살고 싶어요.(생략)제가 바라는 것은 적당한 재산에 근심 없는 삶이에요.(생략) 이곳 생활이 그곳 생활보다 더 나을 것 같아요. 저는 여기서 살게 해주세요. 큰 행복을 누리든, 작은 행복을 누리든 즐겁기는 매한가지니까요.
크수토스는 우선 아들로서가 아니라 내방객으로서 아테나이로 데려갈 것이며 아내를 설득하겠다고 하였고, 이온에게 친구들을 불러모아 회식을 하고 작별인사를 나누도록 시킵니다.
이온은 아버지를 따라가기로 하였고 자신의 어머니가 이방인이 아니고 아테나이인이기를 소망합니다. 아테나이인이 이방인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후 크레우사는 하녀들에게서 이온이 크수토스의 아들이 된 경위에 대해서 듣게되었고, 크레우사의 아버지인 에렉테우스의 가정교사였던 노인은 크수토스가 크레우사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자 여자 노예와 몰래 동침하여 이온을 낳고 델포이인에게 기르라고 한 다음 신탁을 핑계로 이온을 찾아 왕권을 물려주려고 한다는 추측을 합니다.
노인 (생략) 마님께서는 칼을 들거나, 꾀를 쓰거나, 아니면 독약을 써서 남편과 그의 아들을 죽여야해요. 그들이 마님을 죽이기 전에 말예요. 마님께서 이 일을 기피하시면 목숨을 잃게 되실 거예요. 두 원수가 한 지붕 아래서 만나게 되면 둘 중 한 명은 파멸하게 마련이니까요. 저도 마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저는 소년이 잔치 준비를 하고 있는 천막으로 몰래 숨어들어 소년을 죽이는 일에 한몫 거듦으로써 주인들께 저를 먹여살려준 보답을 하고 싶어요. 죽든지, 살든지 간에. 노예들에게 치욕을 안겨주는 것은 이름 한 가지뿐예요. 노예라도 유능하기만 하다면, 그 밖에 다른 모든 점에서 자유민들에 조금도 손색이 없단 말이지요.
새엄마와 자식 간의 관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화의 씨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크레우사는 아폴론이 크수토스에게 아들을 주었다는 말을 듣고 절망을 하여 아폴론을 원망하며 아폴론이 자신을 겁탈한 사실을 발설합니다.
크레우사 (생략) 나는 햇빛에다 대고 외칠래요. "오오, 비열한 유혹자여!"라고. 이전에 그대에게 호의를 베풀지도 않은 내 남편에게 그대는 대를 이을 아들을 주시는구려. 하지만 그대의 아들이기도 한 내 아들은, 무정한 이여, 없어졌어요. 어머니가 싸준 강보에서 독수리들이 먹이로 채어 가버렸어요. 그대를 미워하고 있어요, 델로스 섬도, 레토가 신성한 진통 끝에 그대를 낳은 제우스의 정원에 있는 잎이 부드러운 종려나무 옆의 월계수 어린 가지들도.
노인은 크레우사가 겪은 일을 듣고 분개하여 그녀에게 록시아스(아폴론)의 신성한 신탁소에 불을 질러 복수하라고 합니다. 크레우사는 못하겠다고 하였고, 노인은 그러면 남편 크수토스를 죽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못하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적대자로 나타난 아들을 죽이라고 합니다. 크레우사는 그 조언은 받아들여 실행에 옮기려고 합니다.
크레우사는 노인에게 자신들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팔찌에 고르고의 피 두 방울이 있는데 그 중 한 방울은 치명적이고, 다른 것은 병을 낫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크레우사는 이온이 아테나이에 들어오면 죽이겠다고 했지만, 노인은 그렇게 되면 크레우사가 의심을 받게 되니, 지금 있는 곳(델포이)에서 죽이라고 조언합니다.
크레우사는 노인에게 팔찌를 건네며, 이온의 술잔에 독을 타라고 시킵니다.
그러나 이 암살계획은 탄로가 났고 그곳 관원들이 크레우사를 돌로 쳐 죽이려고 찾고 있었으며, 하인들은 크레우사를 구하기 위해 그녀를 찾고 있습니다. 하인은 신이 계획을 드러냈다고 하며, 사건의 전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크수토스는 아들과 재회하게 된 것에 감사하기 위해 디오뉘소스의 두 바위(두 봉우리)를 제물의 피로 흠뻑 적시려고 박코스 신의 불이 활활 타오르는 곳으로 가면서 자신이 너무 늦는다 싶으면 먼저 연회를 베풀라고 말합니다. 이온은 거대한 천막을 치고 델포이 시민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노인이 나서서 금잔을 사람들에게 돌리며 술을 올렸고, 이온에게는 독이 든 술잔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신탁에서 오래 일한 이온은 뭔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모두에게 술을 모두 바닥에 쏟아버리라고 하였고, 모두 이온의 말에 따라 술잔을 바닥에 쏟아버립니다.
그때 신전에서 살고 있던 비둘기들이 목이 말랐던지 바닥에 쏟아버린 포도주에 부리를 담그고 삼켰는데, 다른 비둘기들은 괜찮았는데 이온이 쏟아버린 포도주를 삼킨 비둘기는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죽게되었고, 이를 본 이온은 칼을 들고 포도주를 나누어준 노인에게 달려가 위협하여 사건의 전모를 듣게 됩니다. 사건의 전모를 들은 델포이 지도자들은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에렉테우스의 딸 크레우사를 돌로 쳐죽이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잠시 후 퓌토인들에게 쫓기던 크레우사가 뛰어들어옵니다. 하녀들은 크레우사에게 제단으로 몸을 피신하라고 조언합니다. 제단 옆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크레우사 앞에 이온이 나타납니다.
분노한 이온은 그녀를 파르나소스 산의 절벽에 내던지라는 명령을 하려고 합니다. 이온과 크레우사는 서로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에 대해 언쟁을 벌이게 됩니다. 이온은 제단에 있는 크레우사를 어쩌지 못해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때 포이보스(아폴론)의 예언녀인 여사제 퓌티아가 나타납니다. 퓌티아는 이온이 버려질 때 누워있었던 광주리를 건네주며 이제 어머니를 찾으라고 말합니다. 이온은 자신이 버려졌을 때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크레우사는 그 광주리를 보고 자신이 버린 광주리라는 것을 알고 이온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온은 크레우사의 말을 믿지 않았고 제단에서 뛰쳐나와 포옹하려는 그녀를 체포하려 합니다.
크레우사는 자신이 이온의 생모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그 광주리에 있는 천의 도안에 대해 설명하였고, 턱이 순금으로 빛나는 뱀 두마리가 있는 목걸이와 올리브 나무로 엮은 화관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확실한 증거 앞에서 이온도 크레우사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둘은 드디어 서로를 알아보고 모자지간의 포옹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온과는 달리 크레우사는 자신의 과거를 남편 크수토스가 알게 될까봐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들추지 말아달라고 이온에게 부탁합니다.
이온은 자신의 아버지가 미천한 가문출신이 아니라 아폴론인 것을 알고 기뻐했지만, 한편으로는 크레우사가 치욕을 피하기 위해서 아폴론과 동침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합니다.
크레우사는 진실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온은 쉽게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아폴론의 부탁을 받은 아테나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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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생략) 너는 이 여인의 아들이며, 네 아버지는 아폴론이다. 아폴론이 너를 그 사람에게 맡긴 것은 그가 너를 낳아서가 아니라, 너를 좋은 집안에 보내기 위함이었노라. (생략) 하지만 이 소년이 네 아들이란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 마라. 크수토스에게는 여전히 모느는 게 약이 되고, 너도 네 행복을 즐기며 귀향할 수 있도록 말이니라, 여인이여. 너희들은 잘 가거라! 이번에 너희들의 노고가 끝나고 나면, 내 너희들에게 약속하느니, 행복한 미래가 이어지리라.
코로스 제우스와 레토의 아드님이신 아폴론이시여, 안녕히 계십시오. 집안에 변고를 당한 자는 낙담하지 말고 신을 경배해야 하오. 착한 사람은 결국에는 정당한 보답을 받게 되지만, 악한 사람은 그 본성상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아폴론이 직접 나타나지 않고 아테나에게 부탁해서 상황을 수습한 것은 어쩐지 비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번 비극에서는 신들의 부정한 행동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을 과감하게 하는 것이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천병희 선생님의 해설]
이 드라마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논의되는 문제는 신들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이온」에서 아폴론은 결국 모든 일을 원만히 수습하긴 하지만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 크레우사는 그로 인해 큰 고통을 당했다. 그는 또 예언의 신이면서도 거짓말과 술수로 자기 아들을 크수토스에게 떠넘기려 했으며, 그 태도가 떳떳하지 못함을 알고는 당사자들 앞에 아테나 여신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신들도 복종해야 하는 초자연적 운명과는 전혀 다른 우연의 유희에 농락당할 뻔했으니, 처음에 그는 기만당한 크수토스가 아테나이로 이온을 데려가고 그곳에서 이온이 어머니를 발견하게 할 계획이었으나 크레우사가 중간에서 오해를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뻔했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을 수습하지만 그 역시 우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호메로스나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올륌포스 12신의 당당한 모습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는 주어진 소재에 대한 에우리피데스의 합리주의적 사고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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