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록테테스(소포크레스,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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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저서 읽기/소포클레스 비극전집

필록테테스(소포크레스, 천병희 옮김)

필록테테스(소포크레스, 천병희 옮김)

장 제르맹 드루에, 1786년, 샤르트르 순수미술관


필록테테스는 기원전 409년에 공연되었다. 트로이아 전쟁 때 그리스 명궁 필록테테스는 트로이아로 항해하던 중 독사에 물려 무인도인 램노스 섬에 버려졌다. 그 후 헤라클레스에게 물려받은 활로 사냥을 하며 비참하게 연명한다. 트로이아인 포로 헬레노스(트로이 왕자)가 필록테테스가 가진 헤라클레스의 활 없이는 트로이아가 함락되지 않는다고 예언하자. 그를 데려오도록 오뒷세우스와 네옵톨레모스가 파견된다. 오뒷세우스는 네옵톨레모스에게 그리스 장수들과 말다툼 끝에 귀향하는 길이라고 거짓말을 한 후 어떻게든 활을 손에 넣으라고 지시한다. 마지못해 필록테테스를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던 네옵톨레모스는 그리스로 데려다달라는 필록테테스의 청을 수락한다. 발작이 찾아와 괴로워하던 필록테테스는 활을 네옵톨레모스에게 맡긴 후 잠이 든다. 필록테테스가 잠에서 깨자 네옵톨레모스는 자기 행동을 후회하고 활을 돌려주려 하지만 오뒷세우스가 나타나 활을 가로챈다. 두 사람은 배가 있는 곳으로 가고, 선원들로 구성된 코로스는 탄식하는 필록테테스를 설득한다. 필록테테스가 꿈쩍하지 않자 코로스가 그의 곁을 떠나려는데, 네옵톨레모스가 활을 돌려주려고 돌아오고 오뒷세우스는 만류하려고 뒤쫓아온다. 활을 손에 넣은 필록테테스가 오뒷세우스를 쏘려 하자, 네옵톨레모스가 말린다. 그리고 그와의 약속을 수행하려 한다. 이때 헤라클레스가 나타나 필록테테스에게 그가 네옵톨레모스와 함께 트로이아로 가는 것은 제우스의 뜻이라고 일러준다. 

등장인물


오뒷세우스 라에르테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  아킬레우스의 아들

필록테테스 포이아스의 아들

정탐꾼  장삿배 선주로 변장한 

헤라클레스

코로스  네옵톨레모스 휘하의 선원들로 구성된


장소 렘노스 섬 바닷가. 뒤로 절벽이 솟아 있고, 그 안으로 필록테테스의 동굴이 보인다.

그리스 고대지도

렘노스 섬은 작품에 따라서 사람이 사는 섬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무인도로 나오기도 하는데,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에서는 무인도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극이 시작되면 오뒷세우스와 네옵톨레모스가 등장합니다. 오뒷세우스는 전에 필록테테스가 트로이에 원정을 가던 중 테네도스 섬에서 물뱀에게 다리를 물려, 다리에서 심한 악취가 났을 뿐아니라 통증으로 인해 계속 소리를 질러댔기 때문에 신에게 제주(신에게 바치는 술)와 제물(신에게 바치는 음식)을 제대로 바칠 수가 없어서 그를 렘노스 섬에 버리고 갔던 이야기를 네옵톨레모스에게 해줍니다.

오뒷세우스와 네옵톨레모스가 렘노스 섬에 온 이유는 트로이의 유명한 예언자 헬레노스가 트로이를 함락하기 위해서는 필록테테스가 가지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이 있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헤라클레스는 아내 데이아네이라가 넷소스에게 속아 남편의 사랑을 얻으려고 넷소스의 피를 바른 겉옷을 헤라클레스에게 입혔는데 헤라클레스는 그 피뭍은 옷으로 인해 피부가 타들어가는 고통을 겪으며 죽어갑니다. 너무 괴로웠던 헤라클레스는 오이테산에서 스스로 화장을 하려고, 아들 휠로스에게  장작에 불을 붙여 달라고 애원했으나, 차마 아버지를 죽게 할 수 없었던 휠로스는 망설이게 됩니다. 이때 필록테테스가 헤라클레스가 화장될 수 있게 도와주었고, 그는 그 고마움의 표시로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받게 됩니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 함락을 위하여 필록테테스를 납치해 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필록테테스가 있는 동굴을 찾아갑니다. 

네옵톨레모스는 동굴을 발견하였고, 살림살이는 없고 누웠던 자리만 있는 빈 오두막과 나무로 만든 투박한 잔과 불 피우는 도구도 보게 됩니다. 또한 고름에 절어 있는 누더기 옷들도 발견합니다. 

오뒷세우스는 필록테테스가 먹을거리나 약초를 구하러 갔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오뒷세우스는 네옵톨레모스에게 아킬레우스의 아들임을 밝히고, 그리스군과의 다툼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필록테테스를 속이라고 합니다.

오뒷세우스는 네옵톨레모스가 아버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오뒷세우스로부터 돌려받으려고 하였으나 거절당하였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다고 거짓말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뒷세우스는 필록테테스를 렘노스 섬에 내려놓은 것이 자신이기 때문에 필록테테스가 자신을 보게 된다면 활로 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거짓말 하는 것이 네옵톨레모스의 성미에 맞지 않겠지만 하루만 나쁜 사람이 되어달라고 부탁합니다.

네옵톨레모스는 힘으로 제압할 지언정 거짓말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자신이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네옵톨레모스  (중략) 나는 비열한 방법으로 이기느니 차라리 옳은 일을 하다가 실패하고 싶소.

오뒷세우스  과연 그 아버지(아킬레우스)에 그 아들이군. 나도 그대처럼 젊었을 적에는 혀는 느리고 손은 빨랐다오. 하지만 지금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지요. 인생 제반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말이라는 것을.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는 행동하는 인간형으로 표현되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조금 다르게 묘사된 것 같습니다.
오뒷세우스와 아킬레우스의 캐릭터는 굉장히 상반된 개념으로 비교가 되는데요. 아킬레우스는 이상주의자로 타협보다는 자신의 신념이나 감정이 중요한 인물로 표현되는 반면,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 타협할 수 있는 현실주의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토레모스도 아버지의 성향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문제해결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오뒷세우스와 네옵톨레모스는 상당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는데요. 여러분은 누구의 방식을 취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네옵톨레모스  한데 그대의 명령이란 거짓말하라는 게 아니고 뭐란 말이오?

오뒷세우스  내 말인즉 그대가 계략으로 필록테테스를 잡으라는 것이오.

오뒷세우스는 필록테테스가 헤라클레스의 치명적인 화살을 가지고 있는 한 완력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자신들의 말에 설득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오뒷세우스는 예언에 따라 네옵톨레모스가 필록테테스의 화살을 이용해야 트로이를 함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하였고, 네옵톨레모스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입니다. 

네옵톨레모스는 필록테테스를 기다리기로 하였고, 오뒷세우스는 필록테테스의 눈에 띄지 않게 배로 돌아갑니다.

얼마 후에 필록테테스가 돌아와 네옵톨레모스에게 누구냐고 물었고, 네옵톨레모스는 헬라스(그리스)인이라고 말합니다.

외롭게 지내던 필록테테스는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반가워합니다.

네옵톨레모스는 자신은 아킬레우스의 아들이고 필록테테스에 관해서는 모른다고 시치미를 뗍니다.

필록테테스는 자신이 잠든 사이 렘노스 섬에 버리고 간 오뒷세우스를 원망하는 말을 합니다.

그는 렘노스 섬에는 사람들이 올 이유가 없는 섬이라고 하면서 가끔 사람들이 오기도 하는데, 자신을 말로만 동정하고, 고향에 데려다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10년째 굶주림과 고통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한탄합니다. 

네옵톨레모스는 오뒷세우스가 시킨대로 아버지 아킬레우스의 무구때문에 그리스군과 불화를 겪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거짓말을 합니다.

네옵톨레모스의 말을 들은 필록테테스는 오뒷세우스에게 대한 나쁜 평가를 합니다.

필록테테스  (중략) 그자는 종국에 가서 어떤 부정한 목적을 달성할 가망만 있으면, 어떤 비열한 핑계에도, 어떤 악행에도 혀를 빌려준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오. 놀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큰 아이아스가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것을 보고도 참고 견뎠다는 것이오.

필록테테스는 큰아이아스가 무구경쟁에서 져서 자살을 한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네옵톨레모스가 말해줍니다. 

필록테테스는 큰아이아스의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였으며, 다른 그리스군의 생사도 물어봅니다.

필록테테스는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로코스도 죽었다는 말을 듣자, 그들 대신 오뒷세우스가 죽어야 하는데 하면서 안타까워합니다.

필록테테스의 대화에서 오뒷세우스를 증오하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필록테테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자, 평소에 비호감으로 생각했던 테르시테스의 생사를 물어보았고, 네옵톨레모스는 그가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필록테테스  그럴 줄 알았소. 악한 것은 쉬이 소멸되지 않은 법이니까.(중략)

네옵톨레모스는 필록테테스가 병이 낫기를 빌어주면서, 자신은 출항을 위해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필록테테스는 네옵톨레모스에게 자신을 혼자 내버려두지 말고 고향인 오이테 땅에 데려다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는 렘노스 섬에 들렀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편지를 아버지에게 전해달라고 몇 번을 보냈는데도 소식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을 아버지에게 데려다 달라고 간절히 부탁합니다.

필록테테스  (중략) 내 이제 그대를 호송인 겸 사자로 만났으니, 그대가 나를 구해주시고, 그대가 나를 불쌍히 여기시오. 인간의 운명은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 차 있고, 행운과 불행은 돌고 돈다는 점을 생각하시고, 고통의 바깥에 있는 자는 위험을 보아야 하며, 잘나가는 자일수록 인생을 세심하게 살펴야 하오. 방심하는 사이에 느닷없이 파멸이 닥치지 않도록.

네옵톨레모스는 필록테테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그 때 오뒷세우스가 보낸 정탐꾼이 선주로 변장하고 선원과 함께 나타납니다.

정탐꾼은 네옵톨레모스에게 포이닉스 노인과 테세우스 아들들이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명령으로 네옵톨레모스를 찾아 나섰다고 전합니다.

네옵톨레모스는 정탐꾼에게 그런 일이라면 오뒷세우스가 몸소 사자로 나섰을 것인데 왜 나서지 않았냐고 물어봅니다.

정탐꾼은 오뒷세우스와 디오메데스는 필록테테스를 찾아 항해 중이라고 말합니다.

네옵톨레모스는 자신들이 버렸던 필록테테스를 왜 이제 와서 찾느냐고 물었고, 정탐꾼은 트로이의 예언가 헬레노스(트로이 왕자)를 오뒷세우스가 꾀를 써서 생포했는데, 그가 필록테테스를 데려오지 않으면 절대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없다고 예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정탐꾼은 오뒷세우스가 필록테테스를 잡아가는 일에 자신의 목을 걸었다고 말해주고 자리를 떠납니다.

필록테테스는 오뒷세우스가 자신을 잡으로 오기 전에 빨리 떠나자고 네옵톨레모스에게 재촉하였고, 네옵톨레모스는 지금은 역풍이 불고 있으니, 역풍이 잠잠해지면 떠나자고 말합니다.

마음이 급해진 필록테테스는 역풍이지만 떠나자고 재촉하였고, 네옵톨레모스는  그의 뜻을 받아들여 그에게 필요한 물품을 챙기라고 말합니다.

필록테테스가 상처를 치료할 약과 화살들 중에 잊었거나 빠진 것이 있으면 가져오겠다고 말하자, 네옵톨레모스는 필록테테스가 들고 있는 것이 그 유명한 활이냐고 하면서 자신이 한 번 만져봐도 되겠냐고 물었고, 필록테테스는 네옵톨레모스에게만은 허용하겠다고 말합니다.

둘은 필요한 것을 챙기기 위해 같이 동굴로 들어갑니다.

동굴로 들어가던 필록테테스는 극도의 고통으로 괴성을 지릅니다. 그는 네옵톨레모스에게 자신의 발뒷꿈치를 칼로 베어달라고 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합니다.

그는 네옵톨레모스에게 고통이 멎으면 잠에 빠질텐데 그 때 편히 잘 수 있도록 자신의 활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을 찾으러 온 자들에게 절대 뺏기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합니다.

그는 고통을 느낄 때마다 자신을 버리고 간 오뒷세우스와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를 저주합니다.

그는 또 자신의 모습을 본 네옵톨레모스가 자신을 버리고 갈 까봐 걱정이 되어서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합니다.

네옵톨레모스는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를 안심시켰고, 필록테테스는 잠에 빠져듭니다.

네옵톨레모스  이 사람이 아무것도 듣지 못하지만 이 사람 없이 출항한다면, 이 활을 노획해도 허사임을 나는 알고 있네. 승리의 영관은 그의 것이네. 그를 데려오라고 신께서 명령하셨네. 기만으로 얻은 불완전한 성공은 치욕이네.

네옵톨레모스가 선원들로 구성된 코로스와 이야기하는 사이 필록테테스가 잠에 깨어났고, 그 때 마침 순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네옵톨레모스는 필록테테스를 부축하여 배로 출발하려 하였지만,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네옵톨레모스  아아, 이젠 어떻게 하지?

누구나 어쩌다 혼잣말을 할 때가 가끔 있는데, 네옵톨레모스처럼 마음과 행동의 괴리가 너무 커서 심적으로 불안할 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갑작스런 네옵톨레모스의 말에 필록테테스는 불안해였고, 네옵톨레모스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버립니다.

네옵톨레모스  다 털어놓겠소이다. 그대는 배를 타고 트로이아로, 아카이오이족(그리스군)과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군대로 가야 하오.

네옵톨레모스의 목적을 알게 된 필로테테스는 자신의 활을 달라고 소리치며 노발대발합니다.

필록테테스  (중략) 그는 나를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맹세해놓고 트로이아로 데려가고 있구나. 그는 오른손으로 약속까지 해놓고 내게서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가 갖고 다니던 신성한 활을 빼앗아 아르고스인(그리스군)들에게 자랑 삼아 보이려 하는구나.(중략)  나는 불행히도 나를 먹여준 것들의 먹이가 되고, 내가 전에 사냥하던 것들이 나를 사냥하게 되겠구나.(중략)

네옵톨레모스는 이런 상황에 직면한 것을 너무도 괴로워합니다. 

그때 동굴뒤에서 오뒷세우스가 갑자기 나타납니다.

오뒷세우스는 심하게 반발하는 필록테테스에게 활과 함께 필록테테스를 트로이로 데려가는 것은 제우스의 뜻이라며 항변합니다.

필록테테스는 오뒷세우스를 따라가느니 죽어버리겠다고 말합니다.

필록테테스  당장 바위에서 뛰어내려 저 아래 바위에다 내 머리를 박살내버릴 것이오.

필록테테스는 오뒷세우스는 마지 못해 트로이전쟁에 참여했지만, 자신은 자진하여 전쟁에 참여했음에도 수치스럽게 내던져졌다고 분노합니다.

오뒷세우스가 마지 못해 트로이 원정길에 올랐다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리스군의 트로이 원정이 결정되었을 때,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가 아들 텔레마코스를 출산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라, 오뒷세우스는 미친 척 연기를 해서 원정에서 빠질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이타케까지 그를 찾아간 그리스군의 지혜로운 노인 네스토르는 미친 척 연기하는 오뒷세우스가 끄는 쟁기 앞에 아들 텔레마코스를 데려다 놓았고, 아들을 본 오뒷세우스는 얼른 아들을 안아 위험에서 보호합니다. 이제 그의 미친 연기는 탄로가 났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참전하게 됩니다. 

필록테테스는 버릴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필요에 의해서 자신을 찾느냐면서 저주를 퍼붓습니다.

오뒷세우스 (중략) 나는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오. 나는 매사에 이기고 싶어하는 성미지만, 그대에게만은 그렇지 않소. 내 이번에 그대에게 기꺼이 양보하겠소. 그대들은 그를 놓아주게. 그에게 손대지 말고 이곳에 머물게 내버려두게. 이 무기가 우리 수중에 있는 이상, 우리에게는 그대가 더 이상 필요 없소. 명궁 테우크로스가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오. 활을 다루고 손으로 겨누는 데는 나도 그대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그대가 왜 필요하겠소? 그대의 렘노스나 실컷 거니시오. 우리는 가봐야겠소. 그대의 귀중한 이 활은 마땅히 그대에게 주어졌어야 할 명예를 아마도 내게 넘겨주게 될 것이오.

정말 얄밉게 말하는 오뒷세우스입니다.

필록테테스는 네옵톨레모스에게 희망을 걸어 보지만 오뒷세우스가 그를 재촉하며 빨리 나서자고 합니다. 네옵톨레모스는 선원들에게 혹시 필록테테스가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니 곁에 있으라고 하면서 떠나기 전에 부르겠다고 말합니다.

오뒷세우스와 네옵톨레모스가 필록테테스로부터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빼앗다(프랑수아 자비에 파브르),프랑스 몽펠리에 파브르 미술관 소장.

필록테테스는 이제 활도 없으니 꼼짝없이 굶어죽게 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코로스  오오, 불운한 자여, 이것은 그대가 자청한 것이오. 이런 운명은 외부에서 더 위해한 자에게서 온 것이 아니오. 그대가 지혜를 보여줄 수 있었을 때, 그대는 좋은 운명 대신 나쁜 운명을 택했던 것이오.

필록테테스는 자신의 활이 간교한 새 주인을 만났다며 오뒷세우스를 비나합니다.

코로스 대장부라면 바른말을 해야 할 것이며, 그럴 때도 악담은 삼가야 할 것이오. 오뒷세우스 그분은 군대의 사절에 불과하며 친구들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을 뿐이오.

선원들로 구성된 코로스는 필록테테스에게 같이 갈 것을 설득해 보았지만 그는 요지부동입니다.

필록테테스는 선원들에게 칼이나 도끼가 있으면 자신에게 건네달라고 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저승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합니다.

필록테테스가 동굴 안으로 들어간 후, 네옵톨레모스와 오뒷세우스가 나타납니다.

네옵톨레모스는 필록테테스에게 활을 돌려주겠다고 하였고, 오뒷세우스는 네옵톨레모스를 제지하고 있습니다.

네옵톨레모스  이 활을 나는 비열하고 떳떳치 못한 방법으로 얻었소.

오뒷세우스  그대가 내 조언에 따라 얻었던 것을 되돌려주는 것이 어째서 옳단 말이오?

네옵톨레모스  나는 내가 저지른 과오를 취소하려는 것뿐이오.

오뒷세우스와 네옵톨레모스는 서로 완력을 쓰려고 하다가, 오뒷세우스가 먼저 그만두면서 그리스 전군에게 이 일을 알리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네옵톨레모스는 동굴 안에 들어가 있는 필록테테스를 불러내서 활을 돌려주려는 순간 오뒷세우스가 나타나서, 활을 돌려주는 것을 금지한다고 소리칩니다.

필록테테스는 오뒷세우스에게 화살을 쏘려고 하였고, 네옵톨레모스는 그의 손을 잡아 쏘지 못하게 합니다.

필록테테스는 네옵톨레모스에게 아킬레우스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하면서 칭찬합니다.

네옵톨레모스 (중략) 그대는 신이 보내신 운명에 의해 이 병을 앓고 있는 것이오. 그것은 그대가 크뤼세의 지붕 없는 신전을 숨어서 지키고 있던 뱀에게 다가갔기 때문이오. 그리고 알아두시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동안에는 그대는 결코 이 중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그대가 자진하여 트로이아의 들판으로 가서 우리들 사이에서 아스클레피오스의 두 아들(의사)을 만나 이 병을 치유받은 다음, 이 활과 내 도움으로 트로이아의 성채를 함락하기 전에는 말이오.(중략)

네옵톨레모스는 이 예언은 트로이의 뛰어난 예언가 헬레노스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한 말이니 신빙성이 있다고 하면서 이제 그만 양보하여 같이 가자고 설득하지만, 필록테테스는 자신의 몰골로 그들을 대하고 싶지 않거니와 그들을 믿을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필록테테스는 네옵톨레모스에게 아킬레우스의 무구들을 빼앗음으로써 그를 모욕한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은 옳지 않으니, 트로이로 갈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집으로 호송해주고 그에 대한 사례를 받으라고 부탁합니다.

네옵톨레모스는 내키지는 않지만 아픈 필록테테스를 그냥 놔두고 갈 수가 없어서 필록테테스를 고향에 데려다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떠나려는 순간 필록테테스의 동굴의 바위 위에 헤라클레스가 나타납니다.

헤라클레스 (중략)  잘 알아두시오. 그대의 이 고통들을 통하여 그대도 영광스런 삶을 얻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그대는 저 사람과 함께 트로이아 땅으로 가서 먼저 쓰라린 병을 치유받게 될 것이오. 그런 다음 그대는 군대에서 가장 탁월한 전사로 인정받아 이 모든 재앙의 장본인인 파리스를 내 활로 쏘아 죽이고 트로이아를 함락하게 될 것이오. (중략)

헤라클레스는 필록테테스가 트로이를 함락하고 전리품으로 받은 상의 일부를 자신이 화장된 곳에 기념물로 가져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스피오크레피오스를 트로이로 보내 그를 치유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트로이는 자신의 활로 두 번 함락될 운명이라고 합니다.

헤라클레스에 의한 첫 번째 트로이 함락은 지금의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아버지 라오메돈이 괴물에게 잡혀 있는 자신의 딸 헤시오네를 구해주면 제우스에게 받은 불사의 말을 주기로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아, 화가 난 헤라클레스가 트로이를 공격하여 라오메돈의 아들들을 모두 죽이고 프리아모스만 살려주게 됩니다. 그리고 헤시오네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텔라몬에게 아내로 줍니다. 이제 두 번째 트로이 함락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필록테테스는 헤라클레스를 보고 감동하여, 그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하였고, 헤라클레스는 지금 순풍이 불고 있으니 빨리 출발하라고 재촉합니다.

결국 필록테테스는 렘노스 섬에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게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천병희 선생님의 해설을 옮깁니다.

트로이아의 함락을 위하여 필록테테스를 렘노스 섬에서 데려가는 과정에서 젊은 네옵톨레모스가 겪은 내면의 변화가 이드라마의 사실상 주제라면, 앞서 말한 거짓말이라는 고백, 손에 넣었던 활을 임자에게 되돌려주는 행위, 자기희생이 따르더라도 필록테테스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결의까지 세 단계를 거치는 네옵톨레모스의 내면적 변화를 총괄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개념은 무엇일까?
 
이 드라마의 주제를 총괄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개념은 이 드라마에서 누차 언급되는 본성이라는 개념이다. 말하자면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네옵톨레모스라는 젊은이의 성격 변화가 아니라 그런 줄 알면서도 제 본성에서 벗어났다가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 다시 제 본성으로 돌아가는 내면적 변화다.
 이 드라마에서 오뒷세우스는 『아이아스』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여, 그를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인물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