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쇠망사 2권 25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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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저서 읽기/로마제국 쇠망사(에드워드 기번, 윤수인_김희용 옮김)

로마제국쇠망사 2권 25장(1)

요비아누스의 통치와 사망· 발렌티니아누스의 선출, 동생 발렌스를 공동 통치제로 선택하여 동로마와 서로마 제국을 최종 분할하다

프로코피우스의 반란 민정과 교회 행정 게르마니아 브리타니아 아프리카 동방 도나우 강 발렌티니아누스이 사망 그의 두 아들 그라티아누스와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서로마 제국을 계승하다 동로마 황제의 무력함

 

서기 363년, 교회의 상황

페르시아와의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한 요비아누스 황제는 우선 교회와 국가의 평안을 회복시키는 일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율리아누스가 이교도를 믿음으로써 암묵적으로 이교도와 기독교의 알력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종교로 인해 내부의 적과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로 황제가 된 요비아누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대군기를 내세움으로써 자신이 기독교도임을 고백했고 그리스도교의 법적 권위를 보장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공유하게 했습니다.

교회의 면책 특권은 다시 살아났고 범위도 확대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다시 신학 논쟁을 뜨겁게 벌였습니다. 

호모오우시온파와 아리우스파, 반아리우스파, 에우노미우스파의 주교들이 서로 황제에게 자신들의 세력을 각인시키려고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이들의 격렬한 논쟁에 온건한 성품의 요비아누스는 혼비백산하여 차후에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는데 그의 이런 행동이 무관심하다는 소문을 낳았습니다. 

그는 결국 아타나시우스에게 경의를 표함으로써 니케아신조 쪽으로 마음이 쏠리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요비아누스 황제의 신임을 얻어 다시 교구로 당당하게 귀환하여, 그 후로도 알렉산드리아, 이집트의 교회 조직과 가톨릭 교화를 이끌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요비아누스에게 정통 신앙을 갖는다면 오래도록 평화로운 치세로 보상받게 되리라는 덕담을 건넸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아타나시우스

보편적 관용을 선언한 요비아누스

요비아누스 황제(재위기간: 363년 2월~364년 2월)

기번은 당대 가장 강력한 교파의 교리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요비아누스가 운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다시 안정적인 승리를 한 반면 율리아누스가 지지하던 로마의 전통 종교는 힘을 잃었으며 신전들이 폐쇄되거나 황폐화되었습니다.

율리아누스 황제 시절 호의호식하던 철학자들도 턱수염을 밀며 종교색을 감추었습니다. 이제 기독교도들이 득세했지만 이교도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서기 363년 10월, 안티오크에서 전진하는 요비아누스 

서기 364년 1월

2월, 요비아누스의 죽음

 

페르시아와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한 로마군은 1500마일에 달하는 대장정을 수행하면서 죽음을 넘나드는 고난을 넘어 7개월 만에 안티오크로 귀환하였습니다.

요비아누스는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데도 불구하고 단 6주간의 휴식만을 허락했습니다. 

그는 안티오크 시민들의 악의적인 조롱을 견디기 어려워했으며, 혹시라도 경쟁자가 나타나 유럽의 민심을 얻을까봐 불안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루빨리 콘스탄티노플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보스포루스에서 대서양 연안까지 유럽 전역이 그의 권위를 인정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안심하게 됩니다.

요비아누스는 프랑크족 출신의 충직한 무관 말라리크와 자신의 장인 루킬리아누스에게 갈리아와 일리리쿰의 군사 지휘권을 위임해두었습니다. 

그러나 말라리크는 자신은 자격이 없다고 거절하였고, 장인 루킬리아누스는 랭스에서 우연하게 발생한 바타비족 보병대의 폭동에 휘말려 살해당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요비아누스는 폭동을 일으킨 보병대를 용서함으로써 병사들의 마음을 얻어 충성서약을 받아냅니다.

서로마 군대의 대표단들은 요비아누스 황제와 카파도키아의 티아나에서 만나 예를 표했습니다.

요비아누스는 티아나에서 칼라티아 속주의 안키라에서 그의 어린 아들과 함께 집정관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비아누스는 다다스타나에서 저녁 식사후 휴식하러 들어간 후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에 소화불량, 방의 벽에서 나온 유독 가스로 인한 질식, 독살 등 여러 가지 소문만 돌았을 뿐 제대로 된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비아누스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로 운구되어 선대 황제들 옆에 매장되었습니다.

요비아누스의 아들인 바르로니아누스는 새로운 황제에 의해 한 쪽 눈을 잃고 그 후로 16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 카리토는 평생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 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외줄을 타는 위험을 안고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목숨걸고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욕망이 부질 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